하얀 설경과 상고대로 대변되는 겨울산의 산행 판도가 바뀌고 있다. 지금껏 겨울산이라면 으레 강원도를 떠올렸지만 최근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이상 기온으로 인한 지역별 적설량의 급변 때문이다. 올해 유난히 눈이 가장 많이 내린 곳은 전북 서해안과 내륙지방이었다. 이 때문에 겨울 설산의 대상지로 전북 진안 주변의 산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전북엔 운장, 연석, 구봉, 덕태, 선각, 팔공산(장수) 등 해발 1,000m를 넘나드는 산군(山群)들이 도열해 있고 복주봉, 시루봉, 깃대봉(장수) 등 1,000m급 봉우리들도 산세를 보탠다. 그 중에서도 전문 산꾼들과 호남인들 사이에 명산으로 각광받고 있는 선각산(仙角山'1,141m)은 호남의 겨울산으로 꼽을 만하다.
◆최고의 조망 자랑하는 백운동계곡
전북 진안에 가면 신선이 노닌다는 구름바다의 땅 백운이 있다. 그곳에 덕태산(德泰山)과 선각산 사이를 가르는 협곡 백운동계곡이 있다. 두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에는 굽이굽이에 기암괴석이 웅크린 채 비경을 이루고, 봄에는 온 산을 뒤덮으며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꽃이 장관이다. 시원한 계곡은 폭염을 이겨내는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가을의 단풍도 좋지만 겨울의 하얀 설경과 상고대, 사면팔방이 탁 트이는 조망은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조망지로 손색이 없다.
대구에서 출발해 진안IC에서 30번 국도를 타고 백운면 사무소에서 백운계곡이 있는 이정표로 상백운 마을에 들어서는 데까지 3시간 안팎. 작은 차량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임도를 따라 15분여 진행하면 우측에 점전폭포가 보인다. 폭포 밑 계류를 통과하거나 폭포 상단부 계류를 가로질러 가면 곧장 등산로와 연결된다. 한 시간이면 독진암에 이른다. 지명만 들으면 암자로 오인하기 싶지만 실상은 거대한 바위다. 독진암은 높이와 폭이 각 10~15m 가량 되고 동쪽 망태골 쪽은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 절벽 아래를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횡단해 내려서서 10여분 올라가면 투구봉(972m) 정상에 이른다.
◆마이산'덕태산'남덕유산 등 눈앞에
투구봉에 서면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조망은 이런 것이다'라며 뻐기듯 조망이 펼쳐진다. 북쪽엔 두 귀가 쫑긋한 마이산과 덕태산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너울너울 춤을 춘다. 동쪽으로는 남덕유산 줄기와 삿갓봉이, 남동쪽으로는 선각산과 깃대봉 중선각이, 남쪽으로는 성수산 등 이름 모를 산들이 파노라마를 그린다.
환상적 조망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고역이다. 애써 치고 올라온 길을 10여분 만에 다시 내려간다. 고도를 뚝 떨어뜨리면 첫번째 백운동계곡으로의 탈출로인 한밭재다. 숨이 턱에 찰 즈음 드디어 헬기장이 있는 중선각에 도착한다. 투구봉을 출발한 지 30여분 만이다. 여기서의 조망도 투구봉 못지않다.
중선각에서 정상까지는 25분여 걸린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이 막힘 없이 훌륭하다. 북으로 장자골 건너 덕태산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덕태산 줄기가, 그 너머로 마이산이 확연하다. 동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의 오계치, 섬진강 발원샘을 안고 하늘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천상데미가 가까이 바라보이고, 그 왼쪽 너머로 장안산과 북덕유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연봉들도 하늘금을 그린다.
정상에서 갓걸이봉 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조금 가파르다. 지도상에는 없으나 갓걸이봉 가기 전에 사당골과 열두골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3개 정도 있다. 이미 눈맛은 다본 셈이다. 여기서 그치려면 좌측으로 내려서 백운동계곡 쪽으로 진행하면 된다. 긴 등산을 원하면 갓걸이봉-팔각정-삿갓봉-시루봉-덕태산으로 오르는 원점회귀코스나 오계재-천상데미-선각산자연휴양림 코스로 등산을 연결할 수 있다.
◆체력따라 3~6시간 코스 선택 가능
선각산의 등산 시작점은 몇 군데가 있지만 크게 나누어 두 코스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백운면의 백운동(상백운)과 신암리(데미셈)이다. 어느 곳에서 등산을 시작해도 무방하지만 산행의 목적에 따라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백운동계곡과 투구봉 선각산 시루봉 덕태산과 연계한 코스를 선택하고 원점회귀형 등산을 원한다면 백운동이 기점이 되고,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선각산자연휴양림 천상데미, 갓걸이봉 선각산을 경유, 유동리나 백운동으로 하산할 때는 신암리를 시작점으로 잡으면 된다. 산행 시간은 어느 코스든 3~6시간 정도, 페이스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백운동계곡 입구에는 송어횟집이 몇 군데 있어 하산주 코스로 괜찮을 듯싶다.
#한여름 찬바람'사철 3℃ 석간수 솟아
▷풍혈냉천(風穴冷泉)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양화마을. 일명 말궁굴이산이라고도 불리는 대두산(大頭山'459m) 기슭에 있다. 약 66㎡의 동굴 안에 한여름에도 4~5℃의 찬바람이 나오는 풍혈이 있고, 그 옆으로 사시사철 변함없이 3℃의 물이 솟아나는 석간수(石間水)인 냉천이 있다. 이 풍혈과 냉천이 발견된 것은 1780년경으로, 예전에는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얼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얼음을 볼 수 없다.
자연냉장고와 같은 역할을 하는 동굴은 일제강점기에 한천공장과 잠종(蠶種)보관소로 이용되었으며, 마을 주민들은 김치보관소로 이용했다. 한여름에도 물에 1분 이상 발을 담그고 있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냉천은 명의 허준이 약을 지을 때 썼던 물이라고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 물은 맛이 좋을 뿐 아니라 피부병과 위장병에도 특효가 있는 약수로서, 한국의 명수(名水) 100선에 선정되었다.
글'사진 산정산악회 지홍석 대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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