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은영 국제문제 전문 변호사

'대충대충'이 통하는 한국식 문화 외국 기업들은 전혀 이해 못합니다

#요즘 태평양 너머 캐나다에서 들려오는 한국 대표선수들의 낭보에 미소를 지을 때가 많다. 며칠 뒤에는 김연아 선수가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국민도 월등한 기량을 갖춘 만큼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은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로 심판의 편파 판정, 오심이다. 실제로 우리는 국제대회에서 오심과 관련한 아픈 추억이 꽤 있다.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인 셈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체조 양태영 선수,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김동성 선수가 심판 판정 탓에 억울하게 금메달을 강탈당한 기억이 생생하다.

국제분쟁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은영(45·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룰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우리는 그런 면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스포츠뿐 아니라 사회, 경제 각 분야의 시스템이 하루 빨리 국제 기준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양태영 선수 사건을 직접 맡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중재 절차에도 참여했던 그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국제문제 전문 변호사다. 현재 대한상사중재원, 호주 국제상사중재센터,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 중재인으로 선정돼 있으며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조정위원이기도 하다.

"양태영 선수 사건 때는 아테네에 있던 한국선수단으로부터 급하게 연락을 받고 그날 밤 바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시간은 없는데 비행기 표마저 못 구해 3번이나 갈아타야 했죠. 도착한 뒤에도 우리측 공동변호인으로 선임된 영국 변호사들과 밤을 세워 중재신청서를 겨우 제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가 국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군 법무관 시절 참여했던 '율곡사업' 평가. 미군, 미국 군수업체들과 수시로 만나고 협상하면서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는 것. 국제문제 전문가이다 보니 정확한 영어 구사는 필수다. CAS의 경우에도 중재인 자격을 '충실한 법률 교육을 받고, 국제 중재와 영어 또는 불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명기돼 있다. 그의 경우 1999년부터 3년간 미국 뉴욕대(NYU) 로스쿨 유학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재판이나 중재를 영어로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느냐입니다. 국제 분쟁은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것도 많기 때문에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박 변호사의 기억에 가장 남는 사건 역시 2003년 국내 한 자동차업체와 브라질업체 간 분쟁이었다. 한국기업이 계약서에 애매모호한 표현을 썼던 게 화근이었다. 까딱하다간 수천억원을 손해볼 판이었다. "외국기업들은 '대충대충'이 통하는 한국식 문화를 전혀 이해 못합니다. 사소한 오해의 여지라도 남겨둬선 안됩니다. 결국 2년여간의 중재절차를 마치고 승소해서 권리를 회복했지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대구 출신으로 대봉초교·경복중·영진고를 나온 그는 지역에 대해서도 사고의 전환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구경북 사람의 강점은 신의와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명분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실리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주장이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 애만 태우거나 싸우지 않고도 자신의 입장을 전하여 조화로운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다양한 시각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실제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는 또 지역만의 캐릭터 개발이 시급하다고도 했다. "제가 일년에 서너 달씩 해외출장을 나가는데 요즘은 국가 이미지보다 도시의 이미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구가 한국의 한 도시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세계 속의 'DAEGU'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자산을 활용하여 세계화하려는 노력이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8년 사시 30회에 합격, 서울지법에서 법조인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서울대에서 법학 석사, 미국 뉴욕대에서 국제법 박사를 받았다.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한국 출신 분쟁 전문가가 앞으로 더 늘어야 합니다. 한국인들이 제3국간의 분쟁·조정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한다는 평가가 늘수록 우리에 대한 신용과 국격도 올라가지않겠습니까?"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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