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재정적자 문제가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이미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하락시켰으며, 신용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CDS(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도 투기등급 수준으로 상승했다. 유럽연합(EU)의 지원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파국을 피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재정긴축과 공공부문 근로자의 임금삭감, 연금개혁 등 가혹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리스 국민들의 생활은 예전보다 팍팍해질 것이 분명하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가 전체적인 구조조정을 겪었던 우리로서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 경제는 그리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2009년 말 국가채무 수준도 GDP의 100%를 상회하는 그리스에 비해 훨씬 낮은 36.1%로써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리스 위기가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만은 아니다. 이번 위기의 원인으로는 꼽히고 있는 사회보장 및 연금문제,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높은 청년실업률, 만연한 부정부패 등은 우리에게 낯선 문제가 아니다.
특히 가장 직접적인 원인인 연금문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9년 그리스의 사회보장수입은 GDP의 13.6%에 불과한 반면,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GDP의 19.7%에 달해 이 부문의 적자가 GDP의 6.3%에 이르며, GDP의 6.2%인 재정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 및 연금 관련 적자가 누적되면서 국가채무 수준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 것이다.
연금문제는 일단 불거지고 나면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연금적자의 수혜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현재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제도개혁의 수혜자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연금문제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급급하여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지금까지 온 것이다. 지금도 재정위기 타계를 위해 정부에서 연금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연금생활자를 비롯한 국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재정상황도 낙관할 수준이 아니다. IMF에 따르면 2009년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2.9% 수준이지만, 여기에는 GDP 대비 2.5%의 연금부문 흑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재정적자 규모는 GDP 대비 5.4%이다. 2009년 그리스 재정적자와 불과 0.8%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저부담-고급여' 체계와 '저출산-노령화' 추세가 지속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연금적자 누적으로 그리스와 같은 재정위기가 발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적립액이 최대가 되는 2043년 이전에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해결하려 하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또한 저출산으로 인해 2016년 이후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면서, 2043년 이후 국민연금 적립액이 급속히 고갈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우리 사회의 준비 정도는 다소 실망스럽다. 2007년 납입액을 증가시키고 수령액을 줄여, 연금재원의 고갈속도를 조금 늦추는 미봉책 성격의 개혁이 이루어진 이후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실종된 상태이다. 현 정부 들어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을 통합해 미래세대가 부담하게 될 금액 중 일부를 현재의 납세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다른 현안에 밀려 논의가 지지부진해 현 정부 임기 내에 결론이 날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리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사후약방문으로 연금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미리 준비할 경우 부담률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지만, 사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담률 대폭 인상과 수령액 감소라는 극약처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혹시 이기심에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되는 부담을 물려주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김광수 나이스그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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