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젠 멘탈이다] 강박증

30대 초반의 매력적인 주부가 이웃에게 톡톡히 망신을 샀다. 그녀는 집안에서 용변을 보면 대변이 집안 곳곳에 묻을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럴 리가 없으며, 설사 조금(?) 더럽혀진들 어떠랴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쪽의 생각일 뿐, 다른 쪽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의 대변으로 온갖 것이 더럽혀진다는 생각에 집안에서는 용무를 볼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하기 싫고 뜬금없는 생각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해서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이 강박적 사고이다. 궁리 끝에 남들이 보지 않을 아파트 옥상에 신문지를 펴고서 볼일을 본 다음에는 신문지를 똘똘 뭉쳐서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긴 꼬리가 밟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반복되는 고약한 냄새에 의심을 품은 주부들에게 옥상의 현장을 들키고 만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의사이자 자연신학자였던 피터 로우제이는 적어도 여덟살 때부터 이상한 행동이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에 이름표를 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고, 일일이 숫자를 세면서 하루에 계단을 320개는 반드시 올라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조금이라고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평생을 두고 못 견딘 것이 있었는데, 불결과 무질서이었다. 로우제이가 의사로서 일하던 18세기의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면화산업으로 미증유의 번성을 누리는 동시에 불결과 무질서의 대명사이었다. 이런 상황을 감내하는 방법으로 그는 밤마다 전부터 해오던 단어의 동의어를 찾는 일에 진력했다. 이런 작업이 40년을 넘어, 처음 시작한 지 근 50년 후 1852년 '테사우루스'라는 동의어사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의 이력에 '사전편찬자'라는 항목이 추가된 것은 바로 강박증의 소산이다.

위 두 사람의 공통점인 강박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의 컴퓨터단층촬영이나 핵자기공명영상에서는 뇌 기저신경절의 일부인 미상핵의 크기가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작았다. 기능적 핵자기공명영상이나 양전자방출단층촬영에서는 미상핵 특히 우측 미상핵과 전전두엽의 여러 부위에 대사가 활성화되어 있고 증상이 호전되면 활성이 정상인 수준으로 감소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료로는 세로토닌 활성에 영향을 주는 약물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종합하면, 강박적 사고는 미상핵과 전전두엽의 여러 부위를 얽는 세로토닌 관련 신경회로의 화학적 이상임을 유추할 수 있다.

박종한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