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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 기댈 곳 좁아지는 의료 약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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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의료 약자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지 마세요."

김천 출신의 박모(65)씨는 어릴 적 고향을 떠나 대구에 살면서 몸이 아플 때면 20여년간 대구적십자병원을 찾았다. 진료비가 싼데다 서로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이 많아 의지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주 적십자병원을 찾은 그는 착잡했다. 의료진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병실마다 문이 굳게 닫힌 채 냉랭한 기운만 감도는 병원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크게 아프지 않아도 적십자병원에 가면 의지가 됐고 20여년간 드나들며 정이 들었는데 병원이 문을 닫는다니 둥지를 잃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같은 환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60여년간 대구지역 서민과 의료보호 대상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온 대구적십자병원이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적자경영을 이유로 대구병원을 폐원하려 하고 있다.

대구적십자병원 공공의료 진료실적에 따르면 2008년 의료취약계층 진료는 4만2천500여명으로 집계되는 등 연간 3만~4만명의 서민층이 진료받고 있고 의료급여 환자 입원진료 비율도 연간 70%를 웃돌아 전국 6개 적십자병원 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적십자병원이 의료약자들을 위한 공공의료 부문을 맡아 정부와 시의 공공진료 기능을 대신하면서 지역사회 기여도가 컸다. 병원이 폐원될 경우 지역 빈곤층, 외국인 이주노동자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 계층은 갈 곳을 잃게 된다.

이제 정부와 대구시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다. 대구적십자병원이 취약 계층 건강 검진, 보호자 없는 병실 운영,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 사업 등 민간 의료기관이 감당할 수 없는 공공의료 영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경영이 폐원의 이유라면 정부와 대구시는 지원을 늘려야 한다. 정부와 시는 의료 장비와 외국인 이주노동자 진료에 제한된 구색내기식 지원에서 나아가 실질적인 보탬이 되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또 정부는 대한적십자사로 하여금 수익금 투입을 늘려 병원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전국 6개 적십자병원에 지원하는 예산이 전체 수익금의 0.7%(4억여원)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전문가들은 전체 적십자사 수익금 중 2, 3%만 대구적십자병원에 지원해도 병원을 살릴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와 대구적십자병원은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되는 공적 기관이자 공공재(公共材)이다. 대구적십자병원이 의료 약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아낌없이 주는 버팀목으로 살아 남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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