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獨蘇)전 초기에 독일에 그야말로 박살이 났던 소련은 전세를 돌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전쟁에 쏟아부었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방 지원업무는 물론 전투에 직접 투입돼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밤의 마녀'로 불렸던 제46야간 경폭격기 여성근위대 소속 여성파일럿도 그랬다. 소련연방영웅 훈장을 받은 29명의 여성 파일럿 중 26명이 이 부대 소속이었다. 항법사였던 예브게니아 루드네바도 그중 한명이다.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녀는 모스크바대학 기계공학부와 수학부를 졸업할 만큼 수재였다. 전쟁이 터지자 자원입대한 뒤 소련군 항법학교를 거쳐 전선에 투입됐다. 위험한 야간폭격 임무를 위해 그녀에게 배정된 비행기는 느리고 조종석 덮개도 없는 구식 폴리카르포프 P-2 복엽기였다. 그녀는 이런 고물 비행기를 이끌고 무려 645회라는 경이적인 야간폭격 기록을 세울 만큼 뛰어난 항법사였다. 1944년 오늘 645번째 출격에서 격전지였던 우크라이나 케르치 근처에서 독일군의 대공포에 격추돼 조종사 판나 프로코프예바와 함께 전사했다. 소련연방영웅 훈장 이외에 레닌훈장을 포함, 모두 5개의 훈장에 빛나는 여전사였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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