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를 좌지우지했던 역사 속 여걸들의 공통점 있다면 빼어난 미모와 넘치는 기지(機智)였다. 동양에 여걸 측천무후가 있었다면 18세기 서양엔 평민출신에서 귀족이 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 그에 견줄 수 있다.
결혼한 몸으로 우연히 그 미모가 사냥하던 루이 15세의 눈에 띈 퐁파두르는 곧바로 후작 부인 칭호를 받았고 이어 남편과 이혼, 이듬해 왕의 정식 애첩이 됐다. 이때부터 20년 동안 루이 15세를 매혹시키며 프랑스 정치와 문화계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권세를 누렸다. 돈을 물 쓰듯, 곳곳에 저택과 성곽을 짓고 대신임명을 떡 주무르듯, 그림자 실력자로 행세했다.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러시아 엘리자베타 여제와 교류, 1756년 반(反)프로이센 포위망(7년 전쟁)을 결성했고 높은 지성 덕에 당대의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볼테르와 몽테스키외 등과 교류했다.
"우아한 부인은 모든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는 당시 기록처럼 그녀가 선호했던 미술품과 취향은 로코코 양식발달의 터전이 됐다. 엘리제 궁전(현 프랑스 대통령궁)도 그녀의 저택 중 한 곳이었다. 43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1764년 오늘 죽을 때까지 왕은 그녀를 계속 총애했다고 한다.
우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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