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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활의 고향의 맛] 못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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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철 논두렁에 앉아 먹던 그 맛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산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소들이 들을 갈아엎어 농부들이 노래 부르며 모를 심고 벼가 누렇게 익어갔다. 들길을 가다 모내기를 하면 논두렁에 앉아 못밥을 먹었다. 아! 평생 나는 그렇게 작은 마을의 작은 학교로 오가며 산 강 들과 그곳에 느리고 더디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 살았다.'

여기에 나오는 '논두렁에 앉아 못밥을 먹었다'는 구절을 읽다가 깜짝 놀라 허겁지겁 달려간 곳이 고향의 뒷배미 논두렁이었다. 나는 종종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접할 때 그것이 나의 마음속에 사무치게 그리운 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흔적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과거로 그리고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오늘도 '못밥'이라는 낱말 하나가 나를 고향으로 데려간 기차표였다.

삼십대 청상인 어머니는 맏아들인 나를 '강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며 마음에 들 때까지 심하게 닦달했다. 남들보다 일년 앞선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집어넣어 한두 달에 한번씩 키를 재고 장롱에 금을 그었다. 눈곱만치라도 성장한 기운이 느껴지면 "아이구, 이만큼 컸구나" 하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어머니 따라 6세 때부터 논일

여섯살 때부터 모내기하는 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논으로 데려갔다. 과부 엄마가 겪는 고충을 맏이가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품삯을 주는 일꾼들이 큰 논에서 노랫가락에 맞춰 모내기를 하면 어머니와 나는 반쪼가리 논에서 모를 심었다. "엄마는 다섯줄을 심을 테니 넌 두줄로 따라 오너라." 나에게 목표량을 할당해 주시곤 새참에 이은 점심 준비로 들과 집을 분주하게 내왕하셨다.

#일년 농사의 시작 '모내기'

농가의 모심기는 대단히 큰 행사였다. 첫 단추 끼우기와 같은 일년 농사의 시작이기 때문에 못밥의 반찬도 여느 때보다도 푸짐해야 했다. 우리집의 경우 갈치를 길이로 반 가른 갈치조림과 간고등어 구이는 기본이었으며 멸치를 넣은 감자볶음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주전자에 철철 넘치는 막걸리는 성찬의 중심에 앉아 있었다.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도 이날만은 술을 대하는 태도가 대단히 관대했다.

일꾼들의 못밥 점심이 끝나면 나의 오전 근무도 막을 내린다. 막걸리 주전자와 허드레 물건들을 들고 어머니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 "좀 쉬었다가 공부해라"는 말씀 한마디로 나를 해방시켜 주셨다.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은 다리에 '아까찡기'(머큐로크롬)를 바르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설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이병놀이'에 빠져들면 고된 노동의 기억은 까맣게 사라지고 만다.

고향 동네의 논농사는 대게 남정네들의 품앗이로 행해지는 게 보통이었다. 모심기, 벼베기, 타작 등이 예부터 내려온 '두레' 방식으로 '오늘 내 논에서 일하면 내일 네 논에서 일해 주는' 아름다운 양속을 지켜온 것이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를 품앗이 대열에 넣어주지는 않았다. 노동력이 남자들보다 못한 여자라는 이유에서였다.

#품삯 안 깎고 막걸리도 푸짐하게

농사가 잘 되고 못 되고는 시기를 놓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일꾼을 구할 땐 품삯을 깎지 않았고 반찬과 막걸리도 푸짐하게 내놓으셨다. 그래야 일꾼이 필요할 때 손쉽게 노동력을 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간혹 텔레비전에서 '6시 내 고향'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절절이 사무치는 내 어린 날이 화면으로 재현되는 것 같아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더러 있다. 특히 아낙들이 추수 현장에 새참을 이고 오거나 써레질을 끝낸 농부가 짠지 한 조각으로 막걸리를 마시는 광경을 보면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다. 올해는 열 일 다 제쳐두고 모내기철이 오면 논두렁에 앉아 못밥 한 그릇을 먹고 싶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밥은 누가 해 오지.

구활(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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