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지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는 사건은 늘 사회 갈등의 축과 만나는 것 같다.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하고 괴이한 충돌이 한 사건을 중심으로 메아리치는 것이다.
이번 해군 천안함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해군 초계함이 경계 활동을 하던 중에 침몰한 물리적인 사건이다. 사고 원인이 규명되면 자연히 사태의 본말이 밝혀질 게 거의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함정의 침몰 소식이 알려지고부터 천안함은 일반적인 수습 과정에 맡겨지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이 잠복된 '태풍의 눈'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버리고 만 것이다.
애초부터 서로 다른 이념적 태도를 가진 각각의 언론들은 객관적인 보도보다 자신의 이념적 성향 때문에 유발되는 의혹이나 가능성을 실제처럼 확장시키기 바빴고 시민들도 성향에 따라 사건을 이해해서, 다른 유수한 사건이 터질 때와 마찬가지로 천안함도 보혁(保革) 갈등의 진앙지(震央地)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우리 사회에서 근원적인 갈등과 만나지 않는 사건은 제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주목받지 못하는 현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갈등과 겹칠 때는 끝 모르게 확장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축소되거나 이내 소멸되고 만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에도 보혁의 갈등 구도에서 비껴난 곳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를테면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금양호도 침몰해 여러 선원들이 희생되었으나 그것은 우발적이고 단순한 사고로 여겨졌을 뿐이다. 백령도에서 살아온 저인망 어선의 선원들은 천안함 침몰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까운 심정으로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뜻밖의 해상사고로 선원들을 태운 어선이 가라앉고 말았지만 시신을 건질 수중탐사 장비조차 지원되지 않았다. 이들에게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군당국이나 정부 측만 아니다. 진보 쪽 언론들도 천안함에 대해서는 무수한 의혹을 부풀리며 지면을 할애했지만 금양호에 대해서는 어느새 인색하다. 갈등의 중심에서 비껴난 곳이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대개 빈곤한 계층이지만 저인망 어선의 선원들은 더 가난하다. 그들의 남은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까? 또한 백령도 사고 해역에서 생계를 꾸리는 어민들도 몇 달째 조업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역시 이런 쪽도 갈등 구도와 전혀 무관하다.
하지만 갈등 구도의 바깥에도 중심에 못지않게 역사의 명맥이 흐르고 있고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어쩌면 바깥일수록 삶의 진정성이 더 깃들어 있는지 모른다.
이청준의 소설 은 억눌리면서 살아온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야말로 사회의 이면에서 만나는 진실한 주체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도시 청년이 오랜만에 시골 고향집에 내려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가던 중에 일어난 사고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른 새벽, 비가 뿌리는 진흙탕 길을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고장 나 멈춰버렸는데 시골 승객들은 별로 불평도 하지 않는다. 운전사는 구조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잠을 자버리고 장꾼들이나 노인들이 대다수인 승객들은 운전사에게 항의를 하기는커녕 아예 버스 안에서 전을 펴고 장사를 하는 등 만사태평이다. 화가 치민 청년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사람 몰골로 태어났으면 사람값을 하라"고 한심한 촌 승객들을 질책한다. 장꾼 중 하나가 시큰둥하게 청년을 돌아본다. 도시 사람들이야 안 그렇겠지만, 자신들은 버스가 자주 고장 나고 흙탕길에 빠지기도 일쑤라, 그렇게 따지면서 살지 못한다고 대꾸한다. 어리석고 답답한 촌 승객들을 살펴보던 청년은 그제야 이들의 끈질긴 참을성이 우리 백성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기디질긴 삶의 숨결'임을 깨닫는다.
이슈가 되지 못하는, 중심 사건의 바깥에는 에 나오는 촌 승객들처럼 연약한 삶이 있다. 유별나게 항의조차 못하고 버스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그들처럼, 큰 사건 바깥에는 외면당한 채 흘리는 눈물이 있고 희생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진다면, 보수든 진보든 이념적 잣대를 덜 휘두른다면, 우리 눈은 밝아져서 중심 사건의 바깥으로도 시선(視線)이 다다르게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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