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황금2동에 위치한 '가톨릭푸름터'. 왠지 낯설다. 주택가에 자리한데다 붉은 벽돌로 지어져 모르는 사람 눈에는 커다란 개인주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서정길대주교재단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이다. 보통 복지시설이라고 하면 회색빛의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건물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이명식 원장은 "양수산나 초대원장의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이면 누구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게끔 안락함과 평온함을 주는 가정집으로 꾸민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금남의 복지시설' 가톨릭푸름터를 소개한다.
◆어떤 일을 하나
가톨릭푸름터는 1962년 가톨릭여자기술학원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는 여성들에게 미용이나 자수 등을 가르치는 직업보도시설이었다. 1989년 명칭을 가톨릭여자기술원으로 바꾸었고, 1996년 지금의 건물로 이전했다. 가톨릭푸름터로 전환한 것은 2005년이었다. 이곳이 다른 복지시설과 확연히 구별되는 건 바로 남자들이 들어올 수 없는 금남의 집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주업무는 학교나 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여성 청소년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이다. 남자 청소년은 들어올 수 없다. 푸름터 내에서 생활하는 남성이라고는 관리하는 직원뿐이다. 대구에서는 같은 재단 소속인 '수지의 집'과 함께 둘뿐인 여성 청소년 보호시설이다.
이곳의 수용 인원은 보통 20~25명. 대부분 부모의 이혼 등으로 학교나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가출한 청소년들이다. 이 원장은 "담임 교사나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오기도 하고 다른 청소년상담소나 쉼터와 연결돼 오기도 한다"고 했다.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무료로 숙박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경우 영어, 수학 등 일부 과목은 이곳에서 과외를 받는다. 학업뿐 아니라 원예나 도자기,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자원봉사자 20여명이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아와 함께한다.
미술치료 자원봉사를 7년째 한다는 권정숙(48·여)씨는 이제 여기가 제2의 가정으로 느껴진다. 권씨는 "학교나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적응이 어려워 이곳을 찾아오지만, 잘만 이끌어주면 의외로 재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학생이 많다"며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들을 돕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도 다른 자원봉사에서 얻기 힘든 수확"이라고 했다.
처음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보통 수업을 해도 의자에 앉아만 있을 뿐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경우 권씨는 강압적으로 수업 참여를 종용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 권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외감을 느끼고 수업에 참가한다. 나중에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라고 느끼면 무서울 정도로 적극성을 띤다"고 했다.
고교를 중퇴하고 이곳에 왔다는 김모(16)양. 온 지 한달밖에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가끔 있지만 낮과 밤이 정상적으로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느낀다. 김양은 "과거에는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놀다 보니 생활 사이클이 새벽 늦게 자서 오후 늦게 일어나는 패턴이었다"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보니 그렇게 지내던 때가 후회된다"고 했다. 요즘은 교복 입은 또래들을 보면 자신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민을 깊이 하다 보니 이제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따 대학에 들어가고 미용사 자격증도 따는 것이다. 김양은 "이곳에서는 거의 일 대 일 맞춤교육이 이뤄진다. 내용을 전혀 모르면 초등학교 교재로 가르쳐주기도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이곳을 찾은 청소년들은 19세가 되면 무조건 나가야 한다"며 "그 전에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새 삶을 얻다
2004년 경북 의성에서 새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가출한 A(23)씨. 친어머니와 사별한 뒤 맞은 새어머니가 자신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하자 점점 반항적으로 변했고 결국 집을 나왔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대구로 내려와 상담소와 쉼터 등을 여러 군데 거쳤다. 그 사이 조건만남 등 비행을 저지르고 찜질방이나 PC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탈모 증세도 생겼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런 모습을 감추려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남 앞에서 모자를 벗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벗으라고 해도 끝내 모자 쓰는 것을 고집할 만큼 반항적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상담 덕분에 점차 마음을 열었고, 마침내 모자도 벗었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땄고 미용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미용사로 일하면서 결혼해 지금은 자신을 쏙 빼닮은 딸의 엄마가 됐다.
중3 때 담임 교사의 손에 이끌려 이곳을 찾은 B(21)씨. 그녀는 이곳 환경이 너무 낯설어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다. 꽉 짜인 시간표는 답답하기만 했고, 예전에 같이 놀던 친구들이 보고 싶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뒤 그녀는 확 달라졌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모범생으로 변신했고, 고교에 진학해서는 학급 반장도 맡았다. 고교에 다니면서 양식과 한식, 일식 조리 자격증을 땄고 대학교까지 입학했다.
이 원장은 "이곳을 거치면서 마음을 새롭게 먹고 사회에 나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다. 가끔 자녀를 데리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꾸며져 있나
이곳은 지상 2층, 지하 1층의 붉은 벽돌집이다. 밖에는 주차공간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이 눈길을 끈다. 실내를 둘러봐도 복지시설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잘 꾸며진 가정집 분위기다.
1층에는 응접실과 사무실, 도서관, 대강당 등이 있다. 특히 '새솔'이라는 다과방이 운치 있다. 원래 통유리로 막혀 있던 곳을 다과방으로 만들기 위해 넓혔다고 한다. 크리스털로 덧씌운 유리창과 은은한 조명은 마치 일반 전통찻집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수다도 떨고 상담도 받는다. 건물 뒤쪽에는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전기가마가 놓여 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차례 도자기 수업을 하는데 그때 사용한다. 1년에 한차례 도자기 전시회도 열어 학생들이 만든 도자기를 일반인들에게 판매도 한다. 도서관도 깔끔하다. 장서가 2천권은 족히 되는 것 같은데 대부분이 신간이다.
지하 1층은 음악실과 미용실, 체력단련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음악실은 웬만한 스튜디오 못지 않다. 공간은 그리 넓지 않지만 드럼과 전기기타, 앰프 등 최신 음악기구들로 채워져 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원봉사자에게 음악을 배운다. 미용실은 규모가 좀 큰 편. 미용수업을 받으며 자격증을 준비한다. 벽 한쪽으로 선배들의 미용사 자격증들이 줄줄이 걸려 있어 마치 미용학원을 연상시킨다. 체력단련실의 기계들도 최신식이다. 전체적인 시설을 보면서 복지기관의 시설은 노후하다는 기자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문의 053)764-8537.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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