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독신, 준독신, 비자발적 독신, 싱글맘, 싱글 파더, 재혼 가족, 조부모 가족, 기러기 가족, 다문화 가족, 다국적 가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혼, 가출, 사별 등으로 인해 '아빠, 엄마 그리고 나'의 보편적인 가족 형태가 무너지는 상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 성장기에 이별의 아픔이나 콤플렉스, 히스테리 같은 건 덜 겪을수록 좋겠지만 부모의 선택(이혼)이나 불가피한 사고로 인해 부모 중 한쪽을 잃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적잖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너진 가족 형태 속에서 자라야 하는 세대들, 어쩌면 앞으로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큰 미래 세대의 자녀들을 품어야 할 책임은 부모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도 일정 부분 함께 짊어져야 한다.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시급하다.
가정의 달인 5월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날과 행사가 잦을 때는 이들 가족이 느끼는 슬픔은 더욱 클 터. 그 가운데 싱글 파더(Single father)에 주목해봤다. 사회적인 시선부터 싱글 맘보다 한층 힘든 싱글 파더는 생계를 책임지면서 익숙하지 않은 육아까지 어떻게 혼자 감당하고 있을까. '왠지 궁상맞고 안 돼 보인다'는 인식은 실제와 맞는 걸까. 취재를 통해 그들의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보통 가정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밝은 시선으로 싱글 파더를 보자.
◆원더풀! 아빠의 육아
대구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두 싱글 파더를 만났다. 두 사람의 얘기 중 이런 말이 뇌리에 박혔다.
"아들아, 딸아! 처음에 불행하다 나중에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 행복하다 나중에 불행이 닥쳐오는 사람도 있단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엄마가 없다는 이유가 나중의 행복까지 좌우하지는 않아. 아빠가 대신 그 역할을 해줄게!"-10년 전 심장마비로 아내를 잃은 싱글파더 나원파(가명·44·직장인)씨
"엄마가 애들 학교에 극성일 정도로 자주 가서 담임 교사도 만나고 그랬는데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난 뒤, 그 역할을 아빠인 제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엄마들 사이에서 낯이 뜨거웠는데, 이젠 제가 더 극성이에요. 학급 친구들이 있어도 교실 문을 열고 '아들! 잘해! 파이팅!'을 외쳐 줍니다."-7년 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이한군(가명·41·자영업)씨
두 사람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한쪽 가슴으론 눈물이 흐르고,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한없이 사무치지만 자녀들은 밝고 건강하게 키우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었던 것. 다행히 두 사람은 어머니와 장모가 엄마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나씨의 어머니는 칠순이 넘었지만 아직 건강한데다 음식 솜씨도 좋아 두 자녀의 영양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이씨 역시 장모가 수시로 집에 찾아와 밑반찬을 챙겨주고 손자·손녀를 돌봐주기 때문에 회사에서 회식이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별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은 "이젠 싱글 파더가 몸에 익어 재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아이들 마음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싱글 파더 우리 가족은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가 부재 중인 준싱글 파더
아내와 별거하고 있는 정상훈(가명·39·직장인)씨는 서류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싱글 파더다. 아내가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들(4)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다행히 어머니가 아들을 봐주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지만 육아에 관한 모든 일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 어린이집 원장도 아빠인 정씨에게 자주 전화를 하고 상담을 한다.
정씨는 "아이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잘 따르고 엄마를 그렇게 기다리지도 않는다"며 "차라리 아이 엄마가 없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주말에 아내가 아이를 보러 오지 않는 일이 많아 아들과 둘이 키즈카페나 놀이동산을 다니는 일이 생활화됐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같이 키즈카페에 가서 놀고 저녁 먹자"고 하는 경우도 잦다.
직장인 백전수(가명·34·기획사 직원)씨는 아내가 너무 바빠 준싱글 파더가 됐다. 아내가 전문적인 숍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입이 좋은 데다 그 일을 하지 않고는 가정 경제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 아내의 평균 퇴근시간은 오후 9~10시. 이 때문에 백씨는 매일 종일반에 맡겨 둔 딸(3)을 집에 데리고 돌어와 밥을 먹이며 놀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백씨는 "아내가 너무 바쁘다 보니 집에 들어와서도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는 날이 더 많다"며 "육아와 가사의 90% 이상을 남편인 내가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육아·가사일은 자신이 맡고, 가정사의 중요한 결정은 모두 아내가 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그는 "주위에서는 힘들겠다고 하지만 인식의 문제일 뿐 앞으로는 이런 형태의 가정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싱글 파더를 위한 공간도 생겨
싱글 파더를 위한 특별한 공간과 파티도 생겨나고 있다. 키즈카페의 경우 부모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고 있다. 달성군 죽곡의 한 키즈카페 경우 주변에 야구연습장 등이 있다. 아이를 키즈카페에 맡겨 놓고,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면 주변에서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래의 자녀를 키즈카페에 맡겨두고 주변에서 야구나 게임을 즐기는 아빠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지난해 연말 서울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송년 파티. 200여명의 싱글 파더와 싱글 맘, 그들의 자녀들이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견이나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서로를 인정하고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자리였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가정을 세우는 사람들' 금정진 대표는 "앞으로 가족 해체나 가족 형태 변화가 보편화될 가능성이 큰데 우리 사회는 그에 맞춰 성숙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그들을 보듬어주고 함께 어울리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