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이 밝았느냐
남구만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시조의 대명사처럼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작자는 남구만(南九萬·1629~1711).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 당시 서인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효종 7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냈고, 숙종 때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는 법을 받들어 사사로움이 없었고 언제나 붕당(朋黨)을 염려하여 공의(公議)를 따랐다.
1701년 희빈 장씨를 가볍게 처벌하자고 주장했으나 숙종이 사사(賜死)하기로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그 뒤 유배, 파직 등의 파란을 겪다가 다시 등용되었으나 1707년 관직에서 물러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 『약천집』 『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가 전하고, 문하에 글 배우는 선비가 1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시조로는 이 작품이 유일하게 전하는데 참 아쉬운 일이다.
'동쪽 창문이 밝았느냐 종달새가 우짖는다/ 소를 먹일 아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느냐/ 재 너머 있는 이랑이 긴 밭을 언제 갈려고 하는가'로 풀린다. 경쾌한 아침, 주인 영감은 일찍 잠이 깼는데 소 먹일 아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농촌의 봄은 할 일도 많은데 늦잠을 자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주 밝게 읽힌다. 봄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종장의 '사래'라는 옛말이 주는 느낌도 봄날 아침의 바람 같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농본 사회에서 예부터 부지런한 새로 전해지는 종달새를 내세워 성실함을 일깨우는 나무람이지만, 나무람으로 느껴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
농경시대가 아니라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거쳐 '아침형 인간' 운운하며 아침은 곧잘 부지런함과 손잡는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은 고지식하고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진리임은 시대를 달리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 하기가 참 민망스럽지만 오늘은 '근로자의 날', '일'이란 걸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문무학 (대구예총회장·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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