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장품·속옷·첨단 IT제품…옥수수의 무한변신 어디까지

옥수수가 저탄소·녹색성장 시대를 이끌어 갈 친환경 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옥수수는 2만여가지 제품 생산에 사용될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옥수수가 저탄소·녹색성장 시대를 이끌어 갈 친환경 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옥수수는 2만여가지 제품 생산에 사용될 정도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옥수수 성분으로 만든 친환경 도마.
옥수수 성분으로 만든 친환경 도마.
배터리 덮개를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에코폰.
배터리 덮개를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에코폰.

출출할 때 먹는 간식이나 가축에게 주는 사료 정도로 여겨졌던 옥수수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지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저탄소·녹색성장시대를 열어 갈 친환경 재료로 각광받으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옥수수를 활용한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옥수수의 쓰임새는 놀랍다. 화장품·내의·장갑 등 생활용품에서 IT제품에 이르기까지 2만여 가지의 제품 생산에 옥수수가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옥수수가 없으면 인간의 삶 자체가 제대로 영위되지 않을 정도다. 옥수수의 놀라운 변신과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살펴봤다.

◆왜 옥수수인가

세계가 옥수수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작물에 비해 재배가 용이하고 수확량도 많아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같은 면적에서 벼나 밀보다 2배 가까운 양을 수확할 만큼 경제성이 뛰어나다. 쓰임새가 많은 데 비하면 가격도 싸다. 세계적인 기상 이변과 옥수수에 대한 수요 증가로 가격이 과거에 비해 많이 올랐지만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는 밀의 절반, 콩의 3분의 1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 옥수수로 만든 제품의 경우 인체에 해가 없고 자연분해되기 때문에 환경오염 걱정도 덜 수 있다.

◆산업의 보물

산업 전반에 걸쳐 옥수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자원으로 옥수수가 주목받고 있다. 옥수수로 만든 에탄올이 청정에너지원으로 인식되면서 해마다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옥수수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김순권 교수와 계명대 미생물학과 윤경표 교수가 옥수수대에서 에탄올을 추출해 내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식물성 플라스틱은 2002년 상용화된 이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일명 '썩는 플라스틱'으로 알려진 식물성 플라스틱은 환경호르몬을 방출하지 않으며 미생물과 효소에 의해 100% 분해되기 때문에 환경오염도 유발시키지 않는다. 식물성 플라스틱은 접시·스푼·밀폐용기·물병 등 생활용품과 이유식기·딸랑이 등 유아용품, 휴대전화 배터리 덮개(삼성전자 에코폰)·복합기 카트리지 커버(한국후지제록스 복합기 아페오스포트Ⅲ C3300)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주방용품 전문기업 에코매스코리아가 친환경 옥수수 도마도 선보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식물성 플라스틱 생산량이 2006년 50만t에서 올해 100만t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식물성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 중인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합성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규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 앞으로 옥수수 등을 이용한 식물성 플라스틱의 시장점유율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옥수수로 만든 섬유도 친환경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원사제조업체인 휴비스가 선보인 '인지오'는 옥수수로 만든 원사다. 옥수수 원사는 자연분해되는 장점 외에 피부 트러블을 거의 유발하지 않아 유아·여성·노인복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 유아복업체 '모아베이비'는 지난 3월 피부가 민감한 2세 이하 유아를 위해 '인지오'로 만든 배냇저고리·속싸개·턱받이·인형 등을 출시했다.

유아복 브랜드 '쇼콜라'도 내의·이불 등 옥수수 섬유 시리즈를 판매하고 있으며 옥수수에서 추출한 소재로 만든 웅진케미칼의 '에코웨이-소로나'는 뛰어난 촉감 덕분에 등산복 등 아웃도어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옥수수로 만든 장난감과 섬유탈취제, 벽지, 화장품 등도 나와 있다. 오션의 플레이콘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만들기 교구다. 물만 묻히면 손쉽게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으며, 유해성분이 없어 아이가 물고 빨아도 걱정이 없다. 피죤의 휴대용 탈취제 '쿨데오'는 옥수수 전분을 효소 처리한 사이클론덱스티린(녹말보다 분자량이 적은 당 물질)을 활용한 제품이다. 냄새가 밴 옷감 사이로 도넛 모양의 사이클론덱스티린이 침투, 구멍 안에 냄새 원인균이나 냄새 분자를 가둬 냄새를 없애준다.

서울벽지가 출시한 '옥수수가(家)'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친환경 벽지다. 옥수수가는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이 방출되지 않으며 PVC벽지에 비해 통기성이 좋아 벽지가 썩거나 곰팡이가 생기는 일도 없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DHC의 '올리브 바디 스크럽'은 옥수수 가루와 올리브 오일을 이용해 만들었다.

옥수수는 의약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명순철 중앙대 의대 교수와 이민원 약대 교수팀은 지난해 옥수수 암술에서 항산화·항염증 효과가 뛰어난 루테올린 등 3가지 물질을 추출해 쥐의 방광과 전립선에 주입한 결과, 방광과 전립선 수축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명순철·이민원 교수팀의 연구는 비뇨기계 질환 치료제 및 기능성 소재 개발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계명대 윤경표 교수는 "옥수수는 쓰임새가 워낙 많아 흔히 신이 내린 작물이라고 말한다"며 "현재 옥수수는 식품 산업에 주로 활용되고 있지만 옥수수에 대한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옥수수의 변신 가능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인류의 또 다른 족쇄인가

옥수수를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유전자변형이다. 흔히 'GMO'로 알려진 유전자변형 농작물에 대한 유해성 논란은 진행형이지만 여기 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유전자변형 옥수수를 먹은 쥐가 보통 쥐보다 콩팥이 작고 혈액 성분에도 이상이 생겼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미국 GMO 기업 몬산토의 보고서를 입수해 폭로한 내용이다.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의 경우 유전자변형 옥수수 재배면적이 77%에 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옥수수의 70% 정도가 유전자변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GMO를 이용한 가공식품의 경우 표시의무제가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GMO를 섭취하고 있다.

현재 GMO 표시 대상으로 분류된 농산물은 옥수수·콩·면화·사탕무·캐놀라 등 5개. 유전자변형된 이들 농산물을 사용해 가공식품을 만들 경우 함량 정도에 따라 GMO 표시 대상과 비대상으로 나눠진다. 주 원료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만 표시 대상이다. 게다가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되는 식용유·간장·술 등은 함량 여부와 관계 없이 가공과정에서 유전자가 파괴된다는 이유로 표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GMO는 생산과정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GMO 가운데는 특정 질병에 내성을 갖도록 조작된 것이 많다. 초기에는 농약을 조금만 쳐도 되는 것으로 인식돼 각광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벌레 또는 잡초의 내성도 증가함에 따라 보다 강력하고 많은 양의 농약을 뿌려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GMO를 대량으로 키우며 항공방제를 하는 남미와 미국 등에서 농약중독에 걸린 농민이 속출하고 있다.

옥수수를 보다 많이 생산하기 위해 산림이 옥수수밭으로 개간되면서 또 다른 환경재앙을 불러 올 우려도 낳고 있다. 몇년 전 사이언스지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알려진 에탄올이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에탄올이 화석연료에 비해 온실가스는 덜 배출하지만 재배를 위해 산림 파괴가 무분별하게 진행되면서 결과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게 된다는 것. 또 옥수수 등을 사용한 대체에너지 산업이 팽창하면서 곡물 수요가 증가해 가격 급등과 식량 공급 차질이라는 문제도 낳고 있다.

옥수수를 사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에서는 주로 옥수수를 먹여 소를 사육하고 있다. 옥수수를 먹이면 풀을 먹일 때보다 발육이 2배 빨라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풀 대신 옥수수를 먹이다 보니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장기에 이상이 생긴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아픈 소를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가 과다 투입되면 결국 소를 먹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의학계에서는 많은 가공식품에 들어가 있는 액상과당(고과당 옥수수 시럽)을 다량 섭취할 경우 비만·당뇨뿐 아니라 간경화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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