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부부Ⅰ

배상연
배상연

♥공짜는 없다 끊임없는 미소와 노력

나이 쉰이란 문턱을 바라보면서 왼쪽 어깨에 심한 통증이 찾아왔고 흔히들 오십견이라고 하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왼쪽팔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밤이면 통증이 더 심해져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에 어깨통증 완화운동 등 바쁘게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통증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한의원에서 침을 좀 맞아보면 나을까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꾸준한 운동으로 지금은 약간의 통증만 있을 뿐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 어깨에 통증이 심했던 아픈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 보았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우리 부부가 행복했던 순간, 또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들게 했던 순간, 또한 남편이 마음을 읽어주질 않아서 서운했던 순간들이 병풍에 그림처럼 한 올 한 올 수놓아져 갔다.

2년 전에 남편도 오십견을 겪었다. 나는 내 몸이 아픈 게 아니다 보니, 그동안 남편은 늘 건강했고 또 항상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곧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말로만 몇 번 "아픈 거 좀 어때요"했던 게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노후에 더욱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모습을 한번 그려보았다. 자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얻어 사회에 약간의 봉사도 하면서 결혼하고 오순도순 가정을 꾸려 웃음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메우리라.

우리 부부는 삶의 흔적을 말해주듯 하나 둘 늘어난 주름살과 흰 머리를 함께 바라보며 말 벗, 함께 운동하는 벗, 함께 식사하는 벗, 아플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벗, 등이 가려우면 긁어 주는 벗, 어떠한 상황에도 당신 편이 되어 주는 벗, 손자손녀의 재롱에 같이 즐거워하는 벗이 되는 꿈을 꾼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그저 이루어지는 게 없듯이 노후에 더욱 아름다운 부부가 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미소를, 자녀에게는 더 없는 사랑의 눈빛과 미소를 주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배상연(대구 달서구 이곡동)

♥데이트 거절 '언제예~'를 오해

20여년 전 공군장교로 대구에서 군복무하던 서울 토박이 남편과 그 공군 부대 근처에 위치한 은행 출장소에서 근무한 나와의 첫 만남은 고객과 은행원의 관계로 형식적이고 업무적인 인사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이 공군장교 아저씨가 부드러운 서울 말씨로 업무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적인 말을 걸어왔다. 유니폼에 달린 명찰을 보고 나의 이름을 안 듯 "현숙씨, 퇴근 후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요. 사실 대구가 처음이라 좀 알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실래요?"라며 부탁 섞인 데이트 신청을 건네 왔다. 그러나 난 어릴 적부터 서울 사람들은 성향이 양파와 같아서 벗겨도 벗겨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쉽게 읽을 수 없는 깍쟁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공군장교 아저씨의 데이트 신청에 "언제예~"라고 거절을 했지만 공군장교 아저씨는 "오늘 퇴근하고 은행 앞으로 나오세요. 기다릴테니"라고 말했다. 난 그래도 "됐습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바쁜 업무에 열중하였고 그 사람은 언제 은행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공군장교 아저씨가 "약속을 해놓고 왜 어깁니까? 대구 아가씨들 시간 약속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나 없나요. 시간, 장소까지 알려주니깐 됐다고 허락해놓고 왜 끝까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습니까?"라며 못내 서운함을 표했다.

"언제예~" "됐습니다"라는 대구 사투리를 이해 못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약속을 어긴 것으로만 탓하는 서울 양반이 얄미워서 고객과 은행원의 관계를 떠나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시작했고 데이트에 응할 의향이 없는 사람이 "언제예~"라며 시간은 왜 묻느냐고 했다. 또 장소까지 됐다고 허락하지 않았냐며 따졌다.

이 말들은 대구에선 거절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고객으로만 보았던 공군장교 아저씨의 또 다른 인간적인 친숙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지면서 "언제예~ 됐습니다"라는 대구 사투리가 엮어준 핑크빛 사랑을 꽃피웠고 '부부'라는 위대한 사랑의 열매를 맺었다.

벗겨도 벗겨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 같은 서울 사람이 아닌 벗겨도 벗겨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랑을 주는 서울 남자의 헌신적이고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오늘도 부부의 인연을 성실히 이어가고 있다.

김현숙(대구 북구 대현1동)

♥소 닭 보듯하는 또 다른 의미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夫婦(夫婦)로 맺어져 한평생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말처럼 그리 녹록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 당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에 들떠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 만큼 용기백배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권태기로 접어들어 부부란 명제를 재고해보게 된다.

나 또한 25년이 넘는 결혼 생활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들과 모여 앉은 술자리에서 "요즈음 너의 집은?"하고 물으면 대부분 "소와 닭이지 뭐!"라고 대답한다.

소와 닭! 이제는 만정이 떨어져 "너는 너, 나는 나!"하여 관심 밖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슨 짓을 하든 의심하는 것 없이 모든 걸 믿는다는 표현으로 달리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며 사람 사는 게 그렇듯 우리 집이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집사람 또한 아들 둘이 어느 정도 자라자 "당신의 그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아이들 학원 보내고 우리는 뭘 먹고살아요!"하더니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평소에도 오지랖이 넓어 이곳저곳을 들쑤셔 참견이 어지간하더니 취직 후는 아예 물 만난 가재처럼 귀가 시간이 점차 늦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다 지친 크고 작은 말다툼이 심심찮게 일었고 급기야 '이혼'이란 말이 입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 당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자는 약속을 생각하며 모든 걸 인내하며 참고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집사람은 보약 한 첩을 달여와 먹기 시작했고, 보약까지 먹어가며 회사를 다니는 집사람이 어느 순간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간혹 피곤에 지쳐 이불을 걷어차며 잠든 집사람의 얼굴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발치 끝으로 밀려난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는 내 손길엔 절로 힘이 빠졌고 지금껏 집사람에게 품어왔던 꽁하고 악한 감정은 봄날 눈 녹듯 녹으며 집사람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침대에 눕자마자 곧바로 잠에 취해 가늘게 고는 코골이 소리는 은연중 나로 하여금 부엌으로 내몰았으며 지금은 설거지랑 청소는 아예 내 차지가 되어 집사람의 수고로움을 조금은 덜어주고 있다.

소와 닭, 그렇다고 별거라든가 냉전은 결코 아니다. 비록 어폐는 있지만 우리 부부는 앞으로 금혼식을 넘어 평생을 서로 믿고 의지하며 동반자로서 오순도순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잘 살아갈 것이다.

이원선(대구 수성구 중동)

♥덕 보려 하는 생각만 버린다면

성철 스님이 "상대에게 덕을 보려고 하지 말고 덕을 보이려고 생각하고 결혼하면 후회 없는 결혼생활이 된다"고 말씀 하셨듯이 남편은 나에게 덕을 보이려고 만난 사람인 듯하다. 세상을 한층 밝게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준 당신께 이번 부부의 날을 맞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999년 큰아들은 병역의무를 마치고 복학하고 작은 아들도 입학했으며 거기에 늦깎이 대학생인 나까지 4인 가족에 3인의 대학생이 남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1992년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력증으로 가슴을 여는 수술을 받고 10년간 병원 출입을 해야 했으니 당시만 해도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여유롭지 못했지만 취미가 공부라는 걸 알고 허락해준 당신. 살면서 내가 들떠 있으면 부정적이 될 수도 있다고 가라앉히고, 처져 있을 땐 위로의 말로 끌어올려주며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며 앞만 보고 성실히 살아온 당신.

이젠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보며 새들의 노래 소리 들으면서 여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내가 보답하고 싶다. 항상 "남에게 한걸음 양보하고 약간씩 손해 보며 살자"며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묵직하고 깊이 있는 든든한 사람! 두꺼운 입술, 무거운 입으로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남편 김학구씨. 하늘과 땅을 볼 수 있는 그날까지 내 생명 이상으로 사랑하리라!

권오심(대구 남구 대명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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