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는 누구나 한번만 오는 곳이자, 꼭 한번 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호스피스는 남녀노소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이지만, 호스피스병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임종의 장소로 오해하고 있다.
최근 들어 암의 생존율은 급속히 증가했다.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라'고 한다. 오늘날 암은 더 이상 사형선고가 아니다. 하지만 오래된 암이 재발해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호스피스 접근이 때로는 더 어려울 때가 많다.
딸 아이가 2살 무렵일 때 경혜(가명)씨의 머리에 암이 왔다. 재발하면 수술하기를 15년 동안 7차례 반복했다. 긴 시간 잘 극복했기 때문에 암으로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달 전부터는 두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입 천장을 뚫고 나온 주먹만 한 암 덩어리가 혀를 눌러 숨쉬기도 불편하고, 발음도 어눌해졌다. 맑은 정신과 청각만 남아 있었다.
갑자기 그녀에게 삶이 정말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잠자듯이 죽여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호스피스팀은 최선을 다했다. 의사인 나는 마약성 진통제와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간호사는 코와 입으로 넘어가는 고름덩어리를 뽑아 주었다. 마사지 봉사자는 조심스레 발 마사지를 했고, 목욕봉사자는 그녀를 깨끗이 씻어주었다. 천주교 신자인 경혜씨에게 데레사 수녀님은 "지금 시간이 힘들다고 해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면, 이제까지 열심히 살아온 삶의 보람이 없어진다"며 조금 남은 삶의 의미를 발견해 주었다. 마음이 편한지 배가 고프다고 하는 그녀에게 간병여사는 암 덩어리를 피해서 약주사기로 포도 주스를 넣어 주었다.
호스피스팀은 비올라를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서 작은 음악회를 기획했다.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녀는 염색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새치머리를 염색하기 위해서 그녀보다 더 착한 남편이 염색약을 사가지고 병동에 왔다. 검은색 머리카락 덕분에 훨씬 생기가 있어 보였다. 10명의 음악 대학생의 봉사로 병원 대강당에서 결코 작지 않은 음악회가 열렸다. 경혜씨는 남편과 딸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남은 감각기관을 총동원해 세상의 따뜻함을 느꼈다. 이제 뭐 하냐고 회진할 때 물으면 "가족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한다.
호스피스는 의료적, 사회 봉사적, 그리고 영적 세 가지 돌봄이다. 정신과의사 프랭클 박사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을 보여 주었듯이 호스피스는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통증과 증상을 조절하는 의료적인 접근만 하면 호스피스는 회색이다. 성직자, 봉사자의 사랑으로 색깔을 입히는 것이 컬러풀 호스피스의 진정한 의미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