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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추억은 추억하는 자를 날마다 계몽한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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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짐승의 생살

추억은 가장 든든한 육식

추억은 가장 겸손한 육체

추억은 추억하는 자를 날마다 계몽한다

추억은 실제보다 더 피냄새가 난다

추억은 도살장

추억은 정육점

붉게 점등한 채

싱싱한 살점을 냉동보관한다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구나

번작이끽야(燔灼而喫也)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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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지독한 연애는 거의 같은 장르이다. 바탕색이 붉고 그 과정은 뜨거우며, 성공한 혁명조차 끝은 허허롭더라는 후문이다. '감각의 제국' 같은 이 선연한 육식성의 추억! 기억의 진열장에 "실제보다 더 피냄새가 나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고깃덩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때는 "사랑의 꼬리뼈, 사랑의 안심, 사랑의 갈비살"까지 모든 사랑의 부위를 도가니에 넣고 불을 지피며, 연골이 녹아내리고 진국이 우러날 때까지 고았으리라. 서로의 살과 뼈를 발라 성찬을 권하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그 장소, 지명, 간판, 좋아하던 음식, 즐겨 부르던 노래 등등은 추억하는 자를 은밀히 계몽한다. 낡고 희미해서 이제는 추억하지 않으려는 것들조차도, 그것들은 추억의 주체를 흔들어 깨우며 강제로 계몽시킨다. 세월이 흘러, 무명의 계몽주의자가 황량한 사랑의 유적지에 찾아든다. 그/그녀는 '구지가'라도 부르며"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는 추억을 꺼내 구워먹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냉동보관해 두었던 추억을 구울 뜨거운, '당신'이라는 불판이 없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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