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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검은 꽃밭 / 윤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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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시는 꽃밭이 어두워진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 속, 산과 하늘과 나무와 꽃들이 절벽처럼 에둘러 있다 세계의 문이 닫히듯 물방울 하나 폭 꺼진다 엷은 빛에 기대어 수천 겹 층을 이룬 만상의 색상, 마침내 얇고 어두운 막을 벗어나 꽃밭으로 녹아든다 여러 번 생을 살아도 거듭, 주저 없이 흘러가는 육체들의 검은 강

살붙이여 무변 허공을 질러와 또 점점 부푸는 물방울이여, 더는 매달릴 수 없을 때 누구도 닦아줄 수 없는 물방울 속으로 소리 없이 낯익은 미움이 지나간다

꽃의 발등이 적막하게 물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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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꽃밭은 일견 생명으로 넘쳐나지만, 장맛비 종일 내리는 저녁이면 꽃밭이라고 예외 없이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 속"이라는 미시적이고 가냘픈 세계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산과 하늘과 나무와 같은 거대 우주(宇宙)들에 "절벽처럼" 에둘러져 있다. 존재란 이렇듯 미약(微弱)해서 부질없고, 무상하며 불안한 것이다.

꽃밭 역시 만상과 다름없어, "여러 번 생을 살아도 거듭, 주저 없이 흘러가는 육체들의 검은 강"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여, "더는 매달릴 수 없어" 떨어지려는 그 순간의 물방울을, 세상 그 "누구도 닦아줄 수 없는" 물방울의 떨림을, 그 어두운 눈빛을 기억하라!

세상은 '검은 꽃밭', 당신의 발등이 적막하게 물에 젖어가는 것을 오래 지켜본다. 그 또한 내 운명이기도 한 것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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