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진행된 25일 경기도 군포시의 화산건설. 김완(48) 사장의 방에는 더운 날씨에 비까지 더해 눅눅한 열기가 가득 찼다. 김 사장의 이마엔 구슬땀까지 송골송골 맺혔지만 끝까지 에어컨은 틀지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시원해지는데 수입 연료로 만든 전기를 함부로 쓸 수 없다"고 했다.
김 사장의 첫 사회생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왜 이토록 검소한 지 알 수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그는 삼양재단에 근무했다. 당시 재단 이사장은 자동차와 기사가 있었지만 버스 타기를 생활화했다. '수전노가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50억원을 대학에 기부하는 것을 보고 '돈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를 배웠단다.
김 사장도 상당액을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에 쓰고 있다. "말하고 다니면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며 자신의 선행을 극도로 감췄지만 아동복지와 장애우 지원 분야에선 '큰 손'이라는 후문이다.
삼양재단으로부터 교단에 서달라는 부탁을 뿌리치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사회 환원이었다. 보다 큰돈을 벌어야 선행을 위한 씀씀이도 커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사장은 "저는 30대가 없었어요.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40살이 훌쩍 넘어서 있었습니다. 돈을 벌고 인생을 되돌아 볼 여유가 생기니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이 보였어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내가 행복해지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선행을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고 했다.
김 사장의 인생이 탄탄대로만은 아니다. 1992년 사업 초기 주택·건설 경기 호황으로 돈을 좀 만질 수 있었으나 IMF 때는 적자로 변했다. 더구나 빚보증과 받지 못한 차용금 등으로 수십억원을 날리기도 했다. 한번은 사업이 어렵던 친구가 찾아와 거액의 어음을 맡기고 현금을 빌려갔다. 그 친구는 빌려간 어음을 현금으로 변제하기는커녕 '부도가 날 것 같다'며 수표까지 가져갔다. 수표도 돈도 받지 못한 김 사장이 찾아갔지만 형편이 더 어려워진 것을 알고 사업자금까지 보태준 얘기는 직원들 사이에서 '신화'로 전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묻자 국내 300위권 종합건설사 대표답게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부산~대구 구간은 운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는 "부산-대구간 운하가 건설되면 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클 뿐 아니라 대구엔 내항이 생길 것"이라며 "환적을 할 수 있는 내항 건설은 주변에 반제품 생산공단 설립까지 유도할 수 있게 돼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퇴 이후엔 고향에 내려가 봉사하고 싶다"는 김 사장은 포항 대도초, 포항중·고, 서울산업대를 졸업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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