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소나기Ⅱ

책보 젖을까봐 토란잎 따서 허리 춤에 끼워놓고…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태욱(포항시 북구 대흥동)

다음 주 글감은 '건강검진'입니다.

♥ "아비야, 내일 모내기 하련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전국적으로 봄 가뭄이 넉 달 동안 이어졌다. 의성지방은 하지 전후 삼사일 안에 모내기를 마쳐야 풍년이 든다고 했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야단일 때 밤에 전화가 왔다. "아비야 소나기가 왔다. 내일 모내기 하련다." 정겨운 말씀에 "예"하고 안부를 묻고 전화기를 놓았다. 국지성 소나기에 말랐던 개울에 물이 흥건히 흘렀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그 물을 잡아 모내기를 준비하고 계셨다. 어린 손자 손녀가 함께 도착하니 함박웃음을 보이시며 좋아하셨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방아깨비며 메뚜기를 잡으러 풀밭으로 뛰어다녔다. 어른들은 고된 줄도 모르고 손자 손녀의 노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가득하셨다. 집안 대소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계획대로 모내기를 마쳤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다음날 출근을 위해 대구로 돌아왔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두고 떠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날의 모내기는 소서를 지난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늦은 모내기를 하였지만 그해 농사는 풍년이 들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아이들에게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삶의 커다란 교훈이 되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사는 자녀들은 농사의 소중함과 비 한 방울의 귀중함을 그때 눈으로 보고 배워 쌀 한 톨도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것 같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 뚜껑 열린 장독들 물이 흥건

196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이라서 초가삼간이 있고 우물가 바로 옆에는 장독대가 나란히 진열돼 있었고 넓은 흙마당엔 멍석이 깔려 있었던 때였다. 한여름 어느 날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무덥고 따가운 날이었다. 대가족 열한 식구. 증조부모님, 조부모님, 부모님, 우리 5남매가 한 집에서 살았다.

농사를 지으며 1년 내내 논밭에서 땀 흘리면서 온 식구가 보리밥 한 그릇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던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눈만 뜨면 논밭으로 일 나가시고 우리는 학교를 다녔다. 가난했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볕이 유난히 따가운 날, 10개가 넘는 장독의 뚜껑을 열어 놓고 학교를 갔다. 그런데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과 함께 소나기가 내렸다. 나는 학교에 있었고 전화도 없었던 시절이라 허둥지둥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서 집에 돌아오니 벌써 양념 항아리엔 물이 흥건했다. 그 어이없는 광경을 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순간 억수같이 쏟아지던 소낙비가 그쳤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시부모님께 원망들을 생각에 말없이 울고만 계셨다. 층층시하 자식이 다섯이나 있는데, 된장이며 고추장 등 10개가 넘는 항아리엔 빗물만 가득했다. 절망도 잠시 엄마는 정신을 차리고 윗물만 걷어내고 된장, 고추장을 다시 배합하셨다. 하지만 국간장은 도저히 어쩔 수가 없어 다 버리고 소금으로 나물을 무치고 국도 끓이고 하셨다. 그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십시일반으로 간장 한 그릇씩을 들고 오셨고 엄마는 그 간장으로 손국수를 직접 밀고 썰어서 동네 어른들을 대접하셨다.

50년이 지난 지금 비록 할머님들은 안 계시지만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우리 5남매도 모두 건강하다. 그래서 지금도 소나기만 내리면 시골에 사시는 어른들이 걱정된다. 혹시 빨래는 걷으셨는지? 장 단지 갈무리는 잘 하고 계신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김영화(대구 수성구 범어3동)

♥ 흰색 옷에 토란물 배어 갈색 얼룩이

갑자기 소나기 쏟아지는 날, 흙이 튀어 오르며 미묘한 냄새를 풍긴다. 우리는 주저없이 근처 토란 밭으로 뛰어 들어간다. 책보를 적실까봐 토란잎을 따서 허리(책을 보자기로 둘둘 말아 허리에 찼기 때문)에 끼워 책보를 씌우고, 또 한 잎은 긴 줄기까지 잘라서 우산으로 쓴다. 우리는 넓적한 토란잎을 하나씩 쓰고 누가 뒤따라 올세라. "요이~땅~" 하고 줄행랑치듯 달려 시합을 한다. 가장 먼저 마을 입구 돌무덤 있는 곳에 도착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다섯 명이 달려서 모두 1등이고, 모두 꼴등이기도 하다. 책이며 옷 등을 흠뻑 적시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토란은 다 해져서 너덜거리는데 우산이랍시고 쓰고 있는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한바탕 웃다 보면 어느새 시합을 했다는 걸 잊어버리고 철벅철벅 겨우 걸음을 옮긴다.

소나기가 잦았던 그해 여름, 모처럼 햇살 고운 아침이 밝아 기분 좋게 학교에 갔는데 또 소나기를 만났다. 그날따라 흰옷을 입었는데, 힘 덜 들이고 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호주머니에 토란줄기를 꽂고 겨드랑이로 고정시키면 토란잎은 정확히 내 정수리를 씌워주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흰옷에 토란물이 들어 갈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도랑에 가서 빨랫방망이로 두들겨도 빠지지 않고 원하지 않게 염색이 된 옷을 다 버려 그날 이후 소나기 내리는 날은 절대로 흰옷을 입지 않는다. 그래도 토란잎 쓰고 "요이~땅~" 할 때가 참 재미있었는데….

문삼숙(대구 달서구 용산동)

♥ 옥상 배수구 점검하는 버릇 생겨

2003년 늦여름 어느 날 저녁, 갑작스런 태풍의 영향으로 30평의 옥상바닥이 출렁이는 바다를 방불케 했다. 남편은 두류공원으로 저녁 운동을 갔고, 아이들은 아직 귀가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먹구름과 함께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을 즈음 계단 쪽으로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밖에 나간 가족 걱정과 굉음과 번갯불의 두려움을 뒤로하고 옥상에 올라가 보니 물이 고여 세찬 비바람에 밀물과 썰물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배수구로 달려간 나는 배수구망 위에 대추나무 잎이 소복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리모델링한 노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함은 천둥소리도 들리지 않게 했다. 다급한 마음에 비 맞는 것도 아랑곳없이 우산을 접어 대추나무 잎을 주워 담고 나니 고였던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대추나무 잎은 옆 4층 건물 옥상에서 2층인 우리 건물로 날아오고 있었다. 비바람과 함께 날아오는 나뭇잎은 공포에 떠는 나를 골려주듯 옥상에 붙잡아 놓았다. 2002년 12월에 이사를 와 처음 맞는 여름이었고 그 후 몇 년 동안을 먹구름이 끼거나 자다가도 소나기 오는 소리만 들리면 옥상에 올라 배수구를 점검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지난 봄 옆집 어르신께 조심스레 입을 열어 부탁을 드렸더니 "진작 얘기를 하지 그랬냐? 피해를 줘선 안 될 일이지"하시며 흔쾌히 대추나무를 제거해 주셨다. 그런 덕에 이젠 간간이 날아오는 은행잎 몇 장 정도만 평소에 주우면 깨끗한 상태지만 소나기가 오면 집안을 점검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만약 초저녁에 소나기가 오지 않고 잠이 깊이든 한밤중에 소나기가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려 깊으신 옆집 어르신의 배려에도 고개가 숙여진다.

권오심(대구 남구 대명3동)

♥ 케이크 들고 빗속을 뛰어왔는데

어머니 생신날, 아버지께서는 "얘들아, 오늘 엄마생일이니까 내가 한턱 쏠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한번 썰어보자" 하신다. 가족들은 모두 옷을 갖춰 입고 아버지가 사주실 맛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외출을 했다. 은은히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간 우리는 바깥 경치가 잘 보이는 창문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음악을 들으며 분위기 있는 식사를 마친 우리가 밖으로 나오니 예고에도 없던 소나기가 힘차게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하늘이 맑았기에 아무도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오히려 더 세차게 내렸다. 하는 수 없다면서 아버지는 "자, 준비됐나" 하시면서 가족들을 둘러보시고는 "출발이다!"를 외치고는 적진을 향해 뛰어가는 장군처럼 몸을 뒤뚱거리며 빗속을 달리셨고, 그 뒤를 따라 어머니와 나, 동생이 비를 맞으면서 집을 향해 달렸다.

갑자기 달리던 걸음을 멈추신 아버지는 "야, 그래도 케이크는 사가야지"하시면서 뒤를 돌아보신다. 젖은 몸으로 다시 베이커리를 향해 달리셨고 우리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집으로 와서 샤워를 끝내고 어머니를 위한 생일축하를 하기 위해 케이크를 꺼내 보니 케이크가 한쪽으로 쏠려 모양이 영 아니었다. 동생과 나는 미리 준비한 편지와 선물 공개 행사를 가졌고 어머니는 아주 좋아하셨다. 소나기 덕분에 잊지 못할 어머니 생신파티를 해 드린 것 같아 나도 흐뭇했다.

김유일(대구 달서구 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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