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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추석/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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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우리말 큰사전에 찾아보면, '고성소'(苦聖所)란 '지옥과 천당 사이에 있어 천주교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나, 성세(聖洗)를 받지 못한 어린이, 이교도(異敎徒), 백치(白痴)들의 영혼이 사는 곳'이라고 나옵니다.

마치 고성소에 사는 영혼들처럼, 풍진(風塵)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들도 생활에 부대끼고 피곤에 지쳐서,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싶게 이 현존이라는 실체를 거머쥐지 못하고, 제대로 삶을 삶답게 누리지 못하고 쫓기듯 살고 있는 셈입니다. 진정한 '안식과 평화'는 유예되기만 하는 것이 바로 천국도 지옥도 아닌 이 현세의 생활이 아닌가 합니다.

빨래를 실컷 쳐대 빨고, 헹구어 빨고 싶은 마음의 바닥에는, 푸르른 밤하늘에 휘영청 떠올라 세상을 차별 없이 환히 비춰줄 보름달 달빛에 속진(俗塵)에 혼탁해진 우리들 영혼을 말끔히 헹구어 빨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겠지요. 모쪼록 풍요롭고 여유로운 추석을 보내는 가운데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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