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한다. 우리 한글은 매우 불행한 과거를 가진 언어라고 말한다. 언어는 항상 변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이라고 말한다. 수백 년에 걸쳐 철자가 안정된 영어에 비해 우리말은 지나치게 뜯어 고쳐지며 문법이 개정되어 왔다. 1938년 일제가 우리말 교육 금지를 한 이래 한글은 조국의 분단, 외래어 유입, 중국 및 중앙아시아 등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의 한국어, 최근 인터넷 용어까지 한국어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용역을 줘 실시한 일선 국어교사들의 국어 실력은 단어, 맞춤법 등 평균 65%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무원들의 평균은 55%, 일반인들은 40%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우기 쉽고 과학적으로 창제돼 세계에서 으뜸가는 문자를 가진 자랑스런 한국민들의 모국어 실력이 왜 이 정도밖에 안 될까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본다.
첫째, 한자 교육의 소홀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 한글의 명사 가운데 70% 정도가 한자 유래를 가지므로 한자를 떠나 한글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먹는 음식인 죽(粥)도 그 글자가 한자에서 온 것이다.
둘째, 한글 맞춤법이 최근 한 세기 동안 너무 자주 변하고 세분화'전문화 돼 매우 까다롭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외갓집, 등굣길, 황톳길처럼 사이시옷을 부쩍 많이 넣고 있다. 의사소통 방식이 날로 간단해지고 생략되어 약자를 애용하는 시대에 한글 표기를 무슨 법칙이다 하여 더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다문화 시대에 시민들은 한글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셋째, 외래 문화나 인터넷 문화의 확산 속에서 한글 순혈주의가 심하게 훼손되거나 변형되고 있다. 꿀벅지, 얼짱, 생깐다, 어좁 등등의 표현은 세대 간 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넷째, 한글 표준어는 서울지방 언어가 채택되어 그 결과 각 지역의 지방 사투리는 점차 없어지고 다양한 언어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사투리는 일제 강점기에도 연구가 된 적이 있고, 아직 사투리 속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발음들이 남아 있다.
다섯째, 글로벌 시대에 한글은 계속 외래어의 세례를 받아 더욱 도전받게 될 것이고 국력 신장과 한류, 다문화 민족 유입 등으로 한글을 배우려는 열풍이 더 극대화할 것이다.
또한 영어 교육의 광풍은 한글 교육을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 과거 프랑스인들이 모국어를 지키고자 영어로 질문받으면 모르는 척 외면하거나 불어로 받아 대답하곤 하였으나 프랑스어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으로 보다 쉬운 한글 애용을 장려하기 위하여 혹시 이런 방법으로 한글을 개방할 수는 없을까. 가령 표준어 범위를 확대 허용해 자주 틀리게 되는 한글 표현 몇 가지를 모두 표준어 속에 수용하여 사용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일이다.
이미 언론계, 학계, 종교계 등에서 사용하는 한글이 서로 다른 체계를 이루고 공생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볼 일이다. 예를 들면 '~하였습니다' '~하였읍니다'를 모두 허용한다든가 등교길'등굣길 모두 쓰게 한다든가 하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또한 받침 표기도 어느 한쪽으로 묶어 허용하면 사용자가 편리해질 것이다.
1887년 한글판 성경에 기록된 한 구절 '바울아 네가 밋첫구나'를 보면 한글이 그간 얼마나 변해왔는지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보다 더 쉬운 한글 연구에 다같이 지혜를 모을 때다.
윤성도(계명대 의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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