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제삿날(이중기)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꿈에 한번 다녀가라고 통기하듯 쓰고 싶었다

열두 살 아들내미 지켜보는 자리에서

문 바르고 남은 한지에다 간곡하게 적고 싶었다

일곱 번을 썼다가 구겨버리고 해질 무렵에

옆집 가서 노인에게 부탁해서 한 장 써 왔다

첨잔이 무엇이고 축문을 어찌 알았으랴

조율시이 홍동백서 들은 적 있어도 아예 몰랐다

첫제사 때 봤던 기억 없고 모조리 초면 같다

순서는 몰랐어도 정성껏 지지고 구워 한 상 올렸다

무엇보다 바나나가 풍성해서 보기 좋았다

낮에 따서 올린 복숭아 몇 개도 왠지 낯설지 않았다

아들내미 까무룩 조는 아홉 시 쯤 향 피웠다

대충 몇 번 절하고 술잔 물려 음복을 했다

지방은 타서 흩어지고 베트남 아낙 울지 않았다

들은 귀는 있었는지 열어둔 방문으로 달빛이 쏟아졌다

초저녁이라 남편 제사 하루 당겨 지낸 꼴이 되었다

보아하니 한국으로 팔려오듯 시집온 '베트남 아낙'의 남편 기제사 얘기이군요. 지방(紙榜)을 쓰는 그 심정이 "꿈에 한번 다녀가라고 통기하듯 쓰고 싶었다" 하니, 참 애절하고 간곡하기 그지없는 사부곡(思夫曲)입니다. "일곱 번을 썼다가 구겨버리고 해질 무렵에/ 옆집 가서 노인에게 부탁해서 한 장 써 왔다" 하니, 그거 하나면 되었습니다. 지방을 반듯하게 준비한 그 정성에다, "순서는 몰랐어도 정성껏 지지고 구워 한 상 올렸다" 하니, 그까짓 조율시이니 홍동백서니 하는 법도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바나나가 풍성해서 보기 좋았고, 제사엔 쓰지 않는다는 복숭아도 낮에 직접 따서 올린 것이니, 아낙의 눈에 낯설지 않으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까무룩" 졸기는 해도 열두 살이나 먹은 아들내미가 있어, 우리의 베트남댁 과부는 울지 않았다지 않습니까. 초저녁이라 남편 제사 하루 당겨 지낸 꼴이 된들 어쩌겠습니까. 제사란 것도 어쩌면 결국은 산 사람들의 몫일 테니까요. 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방한 것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
대구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1천억원 규모의 대구로페이 발급과 5천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포함한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며,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변호사 업무를 재개한다고 발표하며, 별도의 사무실 없이 주거지를 사무소로 등록하고 상담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