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 한창우 비행장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대구경북 발전을 위한 사업성 있는 제안에는 투자로 답하겠습니다."
제9회 세계한상대회 참석차 대구를 방문한 일본 '파친코의 대부' 한창우(80) 마루한 회장이 21일 매일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대구경북 발전을 위한 투자 의향을 물어보자 이렇게 답했다.
대구에 청구대학(영남대학교 전신)이 있던 시절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 위해 대구를 찾은 뒤, 정확히 45년 만에 다시 대구를 방문해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한 회장은 "대구도 많이 바뀌었다. 다들 대구가 힘들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대도시로서 충분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 제1의 도시 서울과 제2의 도시 부산 사이에 있는 대구가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사람이 몰려올 수 있는 큰 사업과 구상을 계속 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경남 사천시 동금동에서 태어나 16살의 어린 나이에 쌀 2되와 영어사전 1권만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모진 고난과 역경을 뚫고 일본 파친코 업계의 대부가 된 한 회장. 그의 마루한 기업은 연간 매출액 35조원의 글로벌 투자 및 레저기업이다. 한 회장의 마루한은 일본 내 20대 기업, 한 회장은 일본 내 재벌 순위 17위에 오를 만큼 성공신화를 잇고 있다. 한국계 기업인으로 일본 내 재벌 순위 20위 안에 든 것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에 이어 한 회장이 두 번째다. 한 회장은 이렇게 기업이 커 나가는 것을 보는 동안 나이가 팔순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정정했다. 인터뷰 내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위트와 또렷한 발음은 30대인 기자조차 깜짝 놀라게 했다. 한 회장의 단독 인터뷰 섭외는 기자가 지난해 미국 뉴욕 취재 때 만난 김명찬 미국 버지니아주 상공회의소 회장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울릉도 개발 제안, 아쉽지만 거절
한 회장은 이미 3년 전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로부터 울릉도 개발 건에 관한 투자 제안을 받은 사실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당시 실무진에서 검토한 결과 사업성 부족으로 거절해 조금은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3년 전 김해공항에서 일본으로 떠나려고 VIP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침 일찍 대구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김 도지사의 열정에 감탄했다"며 "김 지사가 제안한 사업서에는 울릉도에 한창우 비행장을 만들고 호텔, 골프, 리조트 등 1천억원 정도를 투자해 종합 레저시설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사실 돈 1천억원은 아무것도 아닌데 지금은 네 아들이 모두 사장, 부사장, 토지개발 담당, 재무 담당 등을 맡고 있고, 일본의 일류 엘리트 출신 간부들이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있어 함부로 개인적인 투자 결정을 하기는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고향 경남 사천뿐 아니라 대구경북도 오로지 하나의 기준, 사업성 있는 투자 제안을 해야 합니다."
한 회장은 인터뷰에서 대구경북에 대한 투자 의향이나 적극적인 투자 선물 보따리를 풀어주지는 않았지만 자식들에게 해 줄 유언을 언론에 처음 공개, 기자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제가 죽고 나면 네 명의 자식들이 10년간은 새로운 사업에 손을 대지 않길 바란다. 포브스 선정 세계 500위 권에 드는 수많은 한 회장의 재산은 죽은 큰 아들(한철문화재단) 몫까지 포함해 5남 2녀에게 7분의 1씩 배분한다. 먼저 1차 목표인 연간 매출액 50조원을 달성하고, 이후 10년 뒤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공격적 투자를 하라" 등이었다. 그는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네 아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어렵게 일궈놓은 마루한 기업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솔직히 밝힌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을 만나다
한 회장은 6년 전 국적을 한국에서 일본으로 바꿨다. 사업상 여러 가지 문제와 일본 내 자신의 위상 등의 문제로 국적을 변경한 것. 하지만 그는 국적과 민족의 개념을 분명히 구분했다. "전 영원한 한민족입니다. 하지만 국적은 제 일신상의 문제로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
15년 전 한국 국적 시절에는 일본 경제에 기여도가 높은 기업인 자격으로 아키히토 일왕을 만나는 행운을 맞았다. 당시 다른 일본인 기업인들은 감히 일왕의 손을 잡을 수도 없었지만 그는 한국 국적으로 외국인으로 분류돼 직접 악수를 했다. "가까이서 일왕 부부와 일가가 사는 모습을 보니 참 겸손할 뿐 아니라 검소하고 소탈해 왜 일본 국민들이 그렇게 존경하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한 회장은 한국인 DNA와 피를 가지고 일본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사업가로 자리매김을 했다. 한국 출신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주는 3등 훈장을 받았으며, 6년 전 일본 국적 변경 때도 법무성과 외무성의 특별 허가를 얻어 한국명을 사용하는 1호 일본 국적자가 됐다. 2호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다.
한국인다운 애틋함과 다정다감함도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내자(內子)가 없었다면 오늘의 마루한은 없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으며, 올해 고향 사천에 부인 이름을 딴 '한창우·나카코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숨진 첫 아들을 기리기 위해 한철문화재단을 설립해 일본 내에서 문화 메세나 역할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그에게 한국의 스포츠 유망주와 스타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에 관해 묻자, "김연아 선수가 참가했던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등에 수억원에 이르는 광고비를 부담한 적이 있다. 박찬호와 박지성에 대한 스폰서 얘기도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눈은 세계로 가슴은 조국으로'
한 회장의 평소 지론이자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온 길이 그랬기 때문에 더 와닿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의 삶은 이랬다. 16세에 일본에서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해 42세에는 볼링 체인 사업을 하다 크게 빚을 져 자살까지 생각했다. 지금의 한국 돈으로 치면 2천억원의 빚을 지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지옥을 맛본 것.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우뚝 일어섰다. 마루한은 파친코 사업에서 일본에 대변화를 가져왔다. 일종의 게임사업이지만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고객의 만족에 초점을 맞췄다. 게임장 안에 샤워장까지 설치할 정도였으니 당시 일본 파친코 업계에서는 마루한의 한 회장에 대해 혁명적인 인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마루한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며 사업을 더욱 다각화하고 있다. 일본에서 건설 분야에 진출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선 은행을 설립하고, 마카오에선 카지노 사업에 투자하는 등 전 세계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마루한 기업은 일본 전역에 260여 개의 파친코 체인점을 갖고 있으며, 연간 매출액 35조 원, 총 직원수 1만5천여 명에 이른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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