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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태의 시와 함께] 수척함에 대하여(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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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도 아무것도 보이고 싶지 않아 골짜기로 불러들인 안개는 자우룩하여 그동안 더 많은 잎들을 떨어뜨리게 하고 있다

볕 나면 여지없이 다 드러나고 말 테지만 가을 산은 이따금 이런 아침을 마련한다, 안으로 아픔을 삭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가니, 산의 안색이 날로 수척해갑니다. 햇살이 시나브로 야위어 가는 것과, 하늘이 점점 파랗게 멀어져가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바람도 한층 더 서늘해져서, 이젠 '바람막이'라도 걸쳐야 합니다.

어젠 시인들 몇이 만나 담소를 나누는 중에, "오십대 후반을 지나니 인생을 거의 다 산 것 같은 심정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가, 무슨 말씀이냐고, 인생은 육십부터가 아니냐는, 핀잔 같은 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 가을 산은, 인생으로 치자면 오십대 후반을 지나고 있는 중인 게 아닐까 합니다. 자우룩하게 마음의 안개를 불러들이게 되는 게,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향하고 있는 이 시기의 심사(心思)가 아닐까요. 물론 그 심사가 "더 많은 잎들을 떨어뜨리게 하"는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지만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 산은 "이따금 이런 아침을 마련"합니다.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도, 저 가을 산처럼 "안으로 아픔을 삭이는 시간"을 통하여, 나이 듦과 늙어감에 대한 이슥한 성찰로 비로소 '큰 긍정'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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