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0新청소년 가출세대 보고서]<하> 가출 청소년 바로 서려면

"그들 감싸줄 사랑의 보금자리 부족하다"

지난달 29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2·28기념공원에서 청소년쉼터 상담원이 거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상담을 하고 있다. 대구시청소년쉼터 제공
지난달 29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2·28기념공원에서 청소년쉼터 상담원이 거리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상담을 하고 있다. 대구시청소년쉼터 제공

1. "저 취직했어요. 첫 월급타면 놀러 갈게요."

저는 가정폭력과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에 가출했습니다. 가출한 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먹고 자는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학교 선생님 추천으로 쉼터를 알게 됐고 1년 동안 그곳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청소년들에게 쉼터 생활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 보는 청소년들이 입소와 퇴소를 반복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키는 것도 힘들고 서로 살아오던 습관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마찰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팀장님과 선생님들의 걱정스러운 말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엔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잘못한 것에 대해 뉘우치게 되고, 제 주변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걱정하고 사랑해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피와 살을 나누지 않아도 이런게 가족이구나! 아, 내가 사랑을 받고 있구나!'하는 가슴 벅찬 기쁨이 생겼습니다.

저는 쉼터가 있었기에 거리로 탈선하지 않고 이렇게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늘 꿈을 가지고 도전하라고 가르쳐주신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팀장님, 선생님, 저 S반도체에 취직했어요. 첫 월급 타면 꼭 놀러갈게요. 사랑해요.

#2. "선생님이 저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가정 형편과 부모의 갈등으로 전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성장했습니다. 그러서인지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고 또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거칠었습니다. 내가 잘못되게 살아가는 것도 다 내게 주어진 환경 탓이라고 원망하며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저에게 주변에서 검정고시는 봐야 한다며 쉼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저에겐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릴 때 헤어졌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선생님 한 분이 저에게 다가오셔서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를 보시며 '다 괜찮아'라며 환하게 웃어주셨습니다. 제 가슴이 뜨거워지며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한 번도 누군가 저를 따뜻하게 안아준 적이 없었거든요. 그동안 세상을 원망했던 저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이곳에서라면 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청소년상담원'이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일을 겪는 친구들이 있다면 지금 옆에 있는 선생님처럼 큰 힘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되돌아보면 쉼터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배웠습니다. 믿음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겐 가장 멋진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출'에서 '탈출'한 청소년들은 '사랑'이 있어야만 바로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 편하게 지낼 공간과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가출 청소년들에게 '빛'이 됐다.

그러나 현실은 열악하다. 대구시청소년쉼터 손병근 팀장은 "쉼터에서 일하는 게 힘들고 지치지만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꿈을 이뤄나가는 것을 보면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열심히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간'이다. 지난달 22일 여성가족부가 전국 79개 청소년 쉼터 이용 청소년 5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 가출 청소년 및 청소년쉼터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출 청소년 75%가 의식주를 해결하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현재 가출 청소년들이 의식주를 해결하며 지낼 수 있는 '쉼터'는 전국적으로 80곳에 불과하다. 청소년복지지원법에 쉼터의 설립 근거가 명시돼 있지만 설립 기준이나 운영, 근무자의 처우 등 세부적인 법적 규정이 없어 쉼터 환경도 열악하다.

경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상준 교수는 "지난 10년간 청소년쉼터를 담당하는 부처가 문화관광부에서 시작해 국가청소년위원회, 보건복지가족부를 거쳐 현재의 여성가족부까지 수차례 바뀌었다"며 "담당 부처가 자주 바뀌면서 구체적 법령을 제정하는 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구시의 경우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 쉼터가 타 시·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의 청소년 쉼터는 단 3곳뿐이다. 광주(2곳)에 이어 전국 13개 시·도 중 두 번째로 열악하다. 대구 쉼터의 평균 보호 정원 역시 단기 10명, 장기 7명에 그쳐 전국 평균 보호 정원(단기 13.3명, 장기 8.6명)에 한참 모자라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는 "쉼터를 운영하려는 단체가 아직 없다. 남자 장기 쉼터의 경우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가출 청소년들을 외면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대구 지역 청소년쉼터 관계자들은 "우라나라 가출 청소년들은 가족으로부터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쳐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가출 청소년들을 단순 문제아로 볼 게 아니라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다각적인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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