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국민들은 바쁘다. 오늘부터 열리는 'G20' 개최 국가의 국격(國格)에 걸맞은 국민이 돼야 하고, 여야 정치권이 입에 달고 사는 '자기편' 국민도 돼야 한다. 최근엔 검찰까지 국민을 내버려 두지 않고 있다. 청원경찰친목회(이하 청목회)의 입법로비 의혹 수사와 관련해 정치권의 반발이 거세게 일자, 김준규 검찰총장은 "국민은 검찰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검찰에 의연한 대처를 주문했다.
'여당 국민' 다르고 '야당 국민' 다른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까지 국민이 필요한 줄은 몰랐다. 이처럼 찾는 곳이 많다 보니 이 나라 국민은 참 힘들고 고달프다. 평소엔 안중에도 없다가 선거 때만 국민을 받들어 모시는 정치권이나, 민초들의 소소한 잘못엔 견문발검(見蚊拔劍)식으로 '큰 칼'을 들이대다 자기들 비리에는 아예 청맹과니가 되는 검찰이 국민을 운운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세 불리로 힘에 겹거나 부칠 때이다.
김 총장의 발언도 서울북부지검의 청목회 입법로비 의혹 수사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협공이 거세지자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수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야권은 검찰의 청목회 수사에 반발해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부실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와 검찰총장 탄핵소추 추진 의사를 밝힌 상태다. 야권만이 아니라 여당조차 검찰의 압수수색을 무리한 수사라며 비판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시작해 정치권으로 진로를 변경한 검찰발 사정 태풍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모두가 국민을 찾으면서도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국민이 바라는 바를 알려주겠다. 먼저 G20 정상회의가 아무리 중요한 국가적 국제행사라 하더라도 국민 생활에 막심한 불편을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회의는 서울서 열리는데 대구지하철 사물함을 폐쇄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 폭발물 테러 위협에 대한 대비라고 하나 과잉 대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긴 서울에선 더 심했다. 지하철역 무정차 운행, 시내버스 정류장 폐쇄, 잦은 검문검색까지는 이해된다. 하지만 교통 통제로 택배 업체가 운송을 포기하고 영화 상영관 휴업, 공연 취소도 모자라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까지 줄이라고 했다니 거의 국가 비상사태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그 수행원 1만 명이 참석하는 G20의 성공 개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행사 하나 치르면서 온 나라와 국민이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을 긴장과 불안 속으로 몰아넣으며 억지 웃음까지 짓도록 할 만큼 대한민국이 후진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차분하게 준비하면서 민생에 끼치는 피해는 최소화했어야 했다.
국민들은 또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특권층의 비리에 검찰이 메스를 가하기 바란다. 정치권에 '검은돈'이 유입됐다면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고 근절시켜야 한다. 김 총장이 '국민'을 거론해서가 아니라 비리 첩보가 입수됐고 증거가 명백하다면 비리 국회의원들을 법에 따라 처리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 해도 확정되지 않은 비리 혐의 공개를 통한 모욕 주기 수사는 정도가 아니다.
검찰의 정치권 수사에 국민들이 동의하면서도 무덤덤한 이유는 '살아 있는 권력'이나 검찰 자체 비리에 눈을 감은 탓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민간인 불법 사찰 건은 부실 수사라며 재수사 주장이 대두했고,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 자체 비리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제살을 도려내는 아픔 없이 남의 살만 베려는 칼은 어느 국민도 두려워하지 않을뿐더러 두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검찰 수사 대상이 된 국회의원들도 떳떳하다면 수사에 당당히 응하면 된다. 법과 제도가 잘못됐다면 국회가 고치면 될 터이다.
최근 방영된 한 TV드라마에선 초선 여자 국회의원이 "국회의원들에게 회초리를 들어 달라"며 눈물지었다. 젊은 검사는 검찰청 로비에서 검사윤리강령을 소리 높여 외쳤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비판하는, 현실에선 결코 등장할 수 없는 '돈키호테'들이다. 하지만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국민의 심정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정치건, 수사건, 모든 일을 국민의 시선으로 처리해 달라는 것이다.
曺永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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