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독도 / 이생진

도시의 고독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수가 있다

허나 독도의 고독은 어디서나 직강하

얼마 후 풍덩 빠지는 소리와 함께 흰 거품이 유서를 띄운다

그 순간에도 고독은 또 한 번 박살이 나고

독도는 그런 식으로 천년만년 고독을 학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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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진부한 것이 되었다. 시구에 고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시인들이 고독하지 않은 건 아니며, 도시는 여전히 '군중 속의 고독'이 만연되고 심화되어가는 곳이다. 익명의 도시에서 현대인들은 고독을 달래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저 어둠 속 도시는 온갖 조명으로 현란하지만, 내 고독을 달래 줄 불빛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고독이 쌓여 섬이 되어버린 독도. 그곳의 에스컬레이터에는 완만한 경사로는 물론 손잡이마저 없다. 망설임 없이 그대로 직강하한다. 독도는 저의 고독을 시퍼런 바다와 허연 파도에 끊임없이 담금질 한다. 천년만년쯤 저의 고독을 학대하고 나면 독도는 비로소 '고독'의 반열에 오르고 명승지가 된다.

'외로움은 모든 위대한 정신의 운명이며, 인식의 아름다움과 집중의 장소'라고 하였다. 고독이라는 손님을 물리치지 말고 기꺼이 맞이하라, 라고도 한다. 치가 떨리도록 우리를 고독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자. 가장 반가운 손님은 검붉은 가을 석양을 배경으로 험한 생의 여행에서 홀로 타박타박 돌아오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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