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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무거운 입, 상냥한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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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출국하던 날 아침 도로 사정은 최악이었다. 남편의 출근길에 지나는 터미널까지 함께 배웅을 나섰다. 연수와 여행을 겸해 혼자서 여러 나라를 넘나드는 일정은 계획 잡기도 쉽지 않았다. 그저께는 이동수단과 숙소를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고 남편은 기어이 한마디 했다. 연수 동안 주말여행도 있을 테니 지금 결정하기가 쉽지 않고, 나름대로는 많이 알아보고 준비했다는 아이에게 조곤조곤 지적하는 말투 깊숙이 숨어있는 아빠의 염려와 사랑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과묵한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부분 질책의 표현이 들어있음을 자신은 알지 못한다. 일찍부터 동생들에게 아버지 같은 오빠나 형의 역할을 해야 했던 그는 혼자서 결정하고 책임지는 무거운 말에 익숙하다. 경상도 특유의 지방색에 지난시절의 권위주의까지 한몫했을 것이다. 칭찬이나 유머가 실린 말에 인색함을 인정하면서도 아내나 아이가 갖는 여유가 빈틈으로 확대돼 보이는지 냉정하게 충고하곤 한다.

나는 그에게 자상하고 달콤한 말을 기대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의 비난과 명령도 사랑으로 해석해 들을 줄 아는 편리하고 상냥한 귀를 갖게 되었다. 다만 그의 삭막한 정서를 진정으로 동정한다. 가슴에서 입으로 오는 사이, 번번이 체온을 잃고 마는 그의 언어습관을 고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음에 책임감도 느낀다. 사소한 기쁨이나 속상함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말을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인간만이 갖는 대화 수단으로 생각은 물론 즐거움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데, 천금처럼 값지고 중요한 말만 하자니 말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불편할까.

혼내지 않고 조언하기, 기꺼이 져주기, 마음에 꼭 들지는 않지만 상대의 선택을 믿어주기, 사랑이 오롯이 전해지도록 걱정해주기…. 쓰다듬어 주려고 내미는 손은 천천히 내밀어야지 속도나 힘이 가해지면 예기치 못한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은 말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사랑을 담는 말일수록 낮고 부드럽다면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생략하는 말에서 아름답고 따뜻한 향기를 잃고 사는 것이 이 사람만의 일일까.

"추우면 올 때 못 가져오더라도 두꺼운 옷 사 입고, 좋은 거 먹고, 잠은 비싼 데서 자란 말이야." 딸아이를 내려주고 대설주의보 속에 엉금엉금 기어온 출근길을 거슬러 아내를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감동적인 말도 그는 화내듯 한다. "이런 날 택시 타기는 쉬운 줄 알아?" 글쎄 그게 그런 속도와 크기로 표현할 말씀이냐고요, '귀하께서는 발화(發話)속도 위반하셨습니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윤 은 현 경일대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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