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언제 내몰릴지… 구조조정 칼날 앞에 선 직장인

기업의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선 직장인들이 생존의 기로에서 고민의 늪만 깊어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기업의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선 직장인들이 생존의 기로에서 고민의 늪만 깊어가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초땡(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 생각), 삼팔선(38세까지 직장 근무),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근무하면 도둑), 육이오(62세까지 직장에 남아 있으면 오적)….

'평생 직장'이란 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직장인들을 풍자한 말로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글로벌 시대 무한경쟁의 파고를 넘기 위해 기업도 몸부림치고 있다. 최근 글로벌기업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앞으로의 10년은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을 한다지만 가정을 둔 가장의 직장 퇴출은 또 하나의 사형선고(?)이다. 잊을 만하면 휘몰아치는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직장인은 파리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로 인해 직장인들의 우울증은 늘어나고 이직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고 있다.

◆지속적 구조조정 칼날 앞에선 직장인

# 지난해 말 중견 건설업체 기획실에 근무하던 A(42) 씨는 퇴사를 했다. 부서별로 감축 인원을 정해 명단을 작성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뒤 자신의 손으로 동료들의 '살생부'를 작성해야 되는 현실에 마음이 괴로워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사표를 던졌다. A씨는 한 달 정도 백수 생활을 하다 마침 서울의 한 중견 건설회사에서 낸 경력사원 모집 공고를 보고 취직했다. 그는 "회사가 강자라면 개인은 약자다. 회사가 어려울 때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고 먼저 사람부터 퇴출시킨다. 나는 운이 좋아 적절한 시기에 이직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직장을 잃으면 다시 취직하기가 힘들다. 약자인 개인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가정도 풍비박산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불쌍하다.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언제 퇴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사람부터 자르지 말고 모두 합심해서 헤쳐나가는 방안을 강구하는 기업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법정관리 중인 대구의 모 기업이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 직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문자와 쪽지 등을 통해 전체 직원 153명 중 82명에게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통보, 사직서 제출을 종용하고 있다. 특히 각 부서 팀장을 내세워 평직원들을 대상으로 사직서 제출을 독려하고, 자진 사직서를 낼 경우 밀린 급여 등을 최우선적으로 정산해 주겠다고 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회사 측은 지난해 M&A 당시 퇴사한 직원에 대한 미지급 급여도 현재까지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 직원은 이번 구조조정의 경우 직원들이 납득할만한 규정도 없고, 특히 법정관리 중인 경우 파산부 판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이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이 기업 인수자인 모 그룹이 구조조정을 주도하지도 않았다며 실체가 없는 이번 조치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직원들은 회사 측의 일방적이고 막무가내식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비대위를 구성해 대응키로 하는 등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 대우자동차판매가 영업직원 200명 가운데 100여 명에게 해고 통보를 한 가운데 밀린 임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해고 대상자에서 제외해 줄 수 있다는 제의를 해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회사 노조위원장은 "실제로 해고를 하지 않는 방법들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이 일단 자르고 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관리직 130여 명도 이달 말까지 정리 해고될 거라는 통보를 받은 가운데, 사 측이 최근 사내 통신망에 공지사항을 띄웠다. 지난해 4월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열 달째 밀린 임금 중 일정액을 반납하면,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할 때 가산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놓고 해고 여부를 저울질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직원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 회사 직원 B씨는 "돈을 내면 일자리를 주고, 돈을 내지 않으면 일자리를 주지 않겠다는 건 오로지 직원들에게만 임금 반납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도덕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 금융계도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지난해 모 은행에서 30여 년간 근무한 C(53) 씨. C씨는 지점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지만 회사로부터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이 씨는 눈물만 삼켜야 했다. 이유는 인사에 있어 고졸 출신이라는 학력에 밀려 더 이상의 진급은 어렵다는 것. 아무리 학벌 위주의 사회라지만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만으로 평생 열과 성을 다해 바쳐 회사를 위해 일해 온 지난 세월이 너무 아쉬웠다고 했다. 그나마 아내마저 암에 걸려 2중의 사형선고를 받은 셈이 됐다.

회사의 구조조정 방법도 교묘하다. 원격지 발령, 은행 출납 업무, 카드 100장 만들기 등 감내하기 못할 일을 맡김으로써 스스로 자진 사퇴의 길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난무하고 있다. 모 은행은 '성과향상추진본부'란 기구를 만들어 구조조정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성과향상추진본부는 성과향상 프로그램을 통해 영업능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로 본부 배치 후 6개월간 평가를 거쳐 목표를 달성하면 현직으로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1년간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감봉 등 징계를 받고 2년간 성과를 내지 못하면 면직 처리될 수 있다. 이 은행은 지난해 11월 희망퇴직 당시 퇴직 권고를 받고도 남아 있는 직원 1천100명 중 저성과자 219명을 성과추진본부에 배치했다.

◆직장인 80% '회사 우울증'

회사의 무차별적인 사원 자르기로 샐러리맨들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D(48) 씨는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 때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심리적 공황 속에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D씨를 고민의 늪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회사 밖에서는 활기차지만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소위 '회사 우울증'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남녀 직장인 5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인 우울증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이 '회사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같은 결과는 성별, 직급 연령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 직장인이 78.6%로 남성(77.2%)에 비해 정도가 다소 높았으며. 직급별로는 조직에서 중간관리자급인 과장급(81.3%)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팀 내 막내급인 사원급도 81.2%로 높았다. 이어 대리급(77.5%), 차장급(69.0%), 부장급(68.0%), 이사급(53.3%) 등의 순이었다. 또 연령대별로는 회사 내 실무가 가장 많은 30대가 81.2%로 가장 높았으며, 다음으로 40대(75.8%), 50대(75.0%), 20대(74.1%) 등의 순이었다.

잡코리아 김화수 사장은 "출근만 하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는 직장인들은 혼자서만 고민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 직장 동료나 선배에게 자신의 감정과 지금의 상황을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좋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직장인 60% '이직 생각'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는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직장인들은 이직 생각이 굴뚝같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듯 어려운 게 현실이다.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www.incruit.com)와 이지서베이(www,ezsurvey.co.kr)가 공동으로 전국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2010 직장인 이직 결산조사 결과 61.6%가 이직하려고 마음먹었거나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 행동에 나선 비율은 그 절반(46.4%)으로 줄었다. 또 실제 이직에 성공한 경우는 10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이직에 성공한 직장인이 스스로 생각한 이직 성공 요인은 '원하는 일자리에 대한 정보 탐색 노력'(29.0%)과 '기존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나만의 입지를 다져 놓은 것'(25.8%)이었다. 또 '동종 관련 업계 사람들과 인맥을 맺고 잘 관리한 것'(1.4%), '신입사원과 다름없는 열정과 성실함을 어필한 것'(19.4%)이 주효했다는 답도 있었다.

전수영기자 poi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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