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적(政敵)

며칠 전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국회 정상화 및 영수회담 관련 회동을 끝내고 같은 차를 타고 활짝 웃으며 국회로 들어오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그런데 그것을 본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웬~일…?"

소위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의 언행이 어쩌면 그렇게도 막가파식인지. 그런 정치판 행태에 익숙한 국민들의 눈길이 갑작스런 화해 무드에 오히려 혼란스러운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올해 초 하원의장이 된 미국 공화당의 존 베이너 의원은 지난달 25일 오바마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 도중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2008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로 나섰다가 오바마에게 패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기립박수를 치는 모습도 언론에 공개되었다.

국익과 대의를 위해서는 여야를 떠나서 한목소리를 내고 당적과 무관하게 화합하는 미 연방의원들의 정치력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여기서 조선시대 숙명의 정적으로 꼽히는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과 남인의 대표 미수 허목의 일화를 떠올려본다.

우암과 미수는 예송(禮訟)으로 낙향과 복직을 거듭하며 평생을 엎치락뒤치락 원한을 쌓아온 원수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미수가 예송에 패해 삼척부사로 좌천되었을 때 우암이 원인모를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여당의 최고 실세로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우암은 아들과 문하생을 불러 미수를 찾아가 처방을 받아오라고 했다. 뜻밖의 주문에 모두가 결사반대하고 나섰지만, 우암의 뜻이 하도 완고해 할 수 없이 삼척으로 미수를 찾아갔다.

그러자 미수는 비상을 넣는 처방을 일러줬고 우암은 아들과 제자들의 난리법석에도 불구하고 그 처방대로 약을 지어 먹고 목숨을 건졌다.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도 정적이 내린 극약 처방을 믿고 따랐던 우암이나 옳은 처방을 내놓았던 미수나 정녕 도량이 큰 정치인이다.

오늘 우리 정치판의 현주소는 어떤가. 상대 당 정치인에 대한 최소한의 인격적인 배려조차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와 약점 긁어대기를 일삼으며 천박한 말장난이나 벌여오지 않았는지. 정녕 우리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이란 한 차를 탄 사람들이 맞는가?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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