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의 마지막 날 저녁, 붐볐던 집안도 이윽고 조용하다. 남은 식구들도 각기 제 방으로 들어가고 텅 빈 거실에 딸아이와 단둘이 남았다. 딱, 아빠 취향이라 예약해두었다며 TV를 켠다. '울지마 톤즈'(2010년), 고(故) 이태석 신부님의 다큐멘터리다.
소문난 잔치에 걸맞은 떠들썩함도 화려함도 없이 그냥 평온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남수단의 오지인 톤즈에서의 8년간 삶의 흔적들을 고즈넉이 따라갈 뿐이다. 지천으로 깔린 환자들을 위하여 맨땅에다, 강변에서 자갈을 나르고 벽돌을 구워서 우선 병원 건물을 짓기로 한다. 그러다가 갈 곳 없어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전쟁통에 허물어진 학교 건물을 다시 세우고 짬짬이 공부도 가르친다. 전쟁과 가난으로 지치고 거칠어진 마음들을 어루만져주기 위하여 음악을 가르치다가, 어느덧 35명의 정식 브라스밴드까지 이루게 되었단다. 이 모든 것을 함께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그저 놀랍고 마냥 감격스러울 뿐이다.
하다못해 못 하나까지 이웃 나라에서 구해 와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1년 만에 병원 공사를 마칠 수 있었던 기적에 대하여, 다 함께 지은 새 교실에 모인 아이들의 열의에 찬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헐벗고 초라한 아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놀라운 탈렌트의 싹을 미리 심어 놓으신 하느님 사랑의 흔적 앞에서 감사와 행복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나보다 더 큰 은총을 받은 이가 어디에 있으며, 나만한 행운아가 또 있을 수 있겠는가? 마비된 감각신경 대신에 아주 사소한 것에도 온몸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나환자들과의 만남을 마련해 주신 축복. 짧은 귀국 중에 우연히 알게 된 말기암 판정과 이어진 긴 투병기간. 세상의 모든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베풀어주신 '고통의 특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에 새삼 목이 멘다.
"의사로서도, 혹은 주변에서도 할 일이 참 많을 텐데, 굳이…"라고 줄기차게 이어지는 질문에, "그럼 어떡해, 내가 하느님에게 끌리는 걸"이라며 수줍은 미소만 띠는 천치 같은 이태석 사제. 눈물을 최고의 수치로 알고 살아온 톤즈 사람들을 웃겼다가 기어코 울려버린 개구쟁이 천사 같은 쫄리 신부님.
하늘의 영광과 권능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더 낮은 땅으로 함께하면 평화와 사랑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그래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불호령 대신에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만드는 데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고 속삭인다. 책머리에 자필로 적은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라는 찬미를 가만히 되돌려 바친다. "쫄리 신부님은 정말 사랑이십니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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