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데 페이즈망

'어울리다'라고 하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느낌이나 분위기에 끼어들어 휩싸인다'는 뜻으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과 상황에 맞춰 섞이는 것을 말합니다. 언뜻 생각해도 자신들이 보아온 '어울리는'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울리다'는 관념을 갖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 또는 어떤 이유에서 '어울리다'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나 되짚어보면 고정관념과 그래왔던 것의 자연스러운 수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부터 보아왔고 들어왔기에 익숙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 만물은 어울리고 엮어져 살아갑니다. 그러한 어울림의 형태를 조합이라고 합니다. 서로 섞임으로써 맞추어지고 둘이 모여 하나가 되기도 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별의 것들이 각각으로 존재하다 하나의 모습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술에서는 이것을 '데 페이즈망'이라고 하는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울릴 수 없는 사물이나 상황을 연결시킴으로써 뜻밖의 의미와 감동, 때로는 당혹감을 주는 것입니다. 벨기에의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가 대표적 작가인데 이 화가의 작품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으로 작품을 만듭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전혀 이질적인 것에 함께 놓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과에 가면무도회 때 쓰는 가면을 그려 넣어 마치 사과가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사람의 얼굴을 지구 모양처럼 원으로 그려서 그 위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거나 하는 방식입니다. 그것을 본 관람객은 자신이 갖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와 상상이 충돌하면서 어색해집니다. 어떤 것에는 무엇이, 이것에는 어떤 형태의 모양이라고 생각해 왔던 생각과 전혀 엉뚱하게 조합된 모습에서 웃음이 터지거나 어이없는 황당함에 복잡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첫 번째 나타나는 반응은 대부분 '저게 뭐야'라는 부정적 정서입니다. 그러면서 '어울리다'라고 하는 현재의 관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이러이러한 모습은 서로 맞는다고 생각되어질까. 그렇지 않은 것에는 왜 거부감이 드는 것일까하는 반응을 나타냅니다. 어울린다고 하는 것도 처음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은 당연하게 보는 것도 첫 모습은 불편하고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보편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이며 특별하지 않은 것입니다. 감성이든 지식이든 '상식적'이라고 하게 되면 이해하기 위한 별도의 설명이나 용례 없이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식도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아주 특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합리적 상식'이 될 수 있습니다. 상식과 상식이 만나서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보는 많은 제품들은 그러한 상식과 상식의 결합과 혹은 그것에 다른 세계를 대입시킴으로써 창조된 것들입니다. 기존의 것들을 변형시키거나 연결시킨 조합의 절묘한 창작품입니다.

'데 페이즈망'은 고정화된 관념에 의문을 남김으로써 다시 바라볼 여지를 남겨 놓습니다. 그럴 수 없다거나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는 관념에 사고의 유연성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다소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들은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기발한 착상으로, 상상을 능가하는 예술작품으로 나타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삶은 날마다 더 많은 '데 페이즈망'으로 채워집니다. 상상 속에서 가능했던 일들, 불가능하다고 믿어왔던 일들이 하루가 다르게 일상과 상식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일상과 상식은 진부하며 더 이상 살펴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삶이 너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 느낀다면 무엇인가 특별하고 분명한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 현재의 상식과 일상이야말로 그것을 실현케 할 훌륭한 소재이며 재료입니다. '어울리는 것' '맞는 것'으로부터 어울리지 않는 것의 조합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면 그 울타리 안에 훨씬 다양한 어울림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고정과 정형의 틀을 놓는다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없다는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이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타(불국사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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