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마음의 쿠션

모처럼 따뜻한 햇살 아래 자동차 창문을 열고 봄의 기운을 느껴보려다 통계청 전광판에서 알려주는 여러 가지 수치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중 우리나라 이혼율에 대한 수치는 언제 보아도 가슴 아프다. 물론 이혼율에 대한 통계 방법상의 차이와 우리나라와 같은 문화적 상황에서 이혼 아닌 이혼자 즉 직장, 부모, 자녀, 경제적 이유에서 이혼 관계에 있으면서도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많은 가정들을 산정한다면 그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통계 수치나 순위보다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필수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혼 사유에 대한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이혼이 늘어나는 것은 부부 간의 성격 차이, 경제 문제, 가족 간의 불화 및 자기중심적 삶의 지향 등 가치관의 변화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중 성격 차이가 이혼 사유 전체의 5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성격 차이로 이혼하는데 예비 신혼부부에게 '당신은 왜 이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습니까?'라는 질문을 해 보니 60%에 이르는 부부들이 '성격이 좋아서' '성격이 맞아서'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격이 좋아서' 배우자로 선택하고 결혼하지만 정작 이혼을 하는 첫 번째 이유 또한 '성격' 때문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서로 보지 못하면 죽을 것 같고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매일 매순간 생각하며 가슴 벅차 한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생활의 일상이 시작되면 서로가 부딪치기 시작한다. 부부가 가정생활 속에서 양말을 벗어서 아무 데나 던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변기 뚜껑을 올렸다가 내려놓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가지 잘못을 지적하면 "당신은 뭐 잘못한 게 없어?"라면서 100가지 잘못을 들고 역습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츰 내 마음에 배우자에 대한 실망과 반감들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의 쿠션'은 딱딱하게 굳어져 간다. '왜 내가 이 사람과 결혼했나?' 후회, 절망과 결심 속에서, 결국 넘지 못할 인생의 큰 결정, 이혼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연애 기간 동안에는 배우자에 대한 인내의 강이 넓고 길게 이어져 내려간다. 배우자가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모든 것이 이해되고 사랑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일상에 접어들면 그 길고 넓었던 강은 좁고 말라 버린 개울이 되고 만다. 그곳에는 물고기의 유유함도, 아이들의 물장난 소리도, 나그네의 시원한 휴식도 없다. 오직 서로 다른 인간의 혹독한 냉전만이 흐를 뿐이다.

이러한 불행을 막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마음에 쿠션을 하나씩 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신영의 '쿠션'이라는 책에서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에 쿠션을 채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자극(말, 행동)들에 대해 너무나도 즉각적으로 표현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보내오는 신호들에 대해 조금의 생각이나 마음의 여유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역경의 자극(불행의 시작)이 들어왔을 때, 나와는 다른 생각이나 말들이 들어왔을 때 푹신한 쿠션으로 감싸 안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금방 평화를 누릴 것이다. 결혼 생활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내 마음의 깊이는 아내, 자녀가 던지는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들어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금방 '흥' 하고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이다. 깊고 풍성한 마음의 우물은 사람들을 모으고 갈증을 해소시키며 새 기운을 얻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상처를 주는 말이나 비난, 경멸의 말에 우리 마음의 우물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내 마음의 우물은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진단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가정에는 '나와 또 다른 나'가 공존하는 소통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통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비싼 선물이나 좋은 집이나 멋진 자동차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아주 작은 말이나 행동에서 나, 아내, 자녀에게 안락함을 안겨주는 풍성한 쿠션이야말로 결혼 생활의 필수품이라 생각된다.

정한철(한국헤티연구소장 유아 교육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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