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흔적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동구시장 공중화장실 여닫이문에 둥근 자국이 나 있다

연두색 칠이 환하게 닳아있다

손바닥 온기와 급하게 서두르는 힘이 만든 자취,

사람들은 저마다 부재의 손바닥으로

저 문을 밀고 갔을 것이다

밀쳐내고 떠밀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여닫이문은

자기도 모르게

저런 흔적을 받아 안은 것인데,

그 자국 또한

중심에서 거리가 한참 멀어서

여닫이문은

바닥에서 짐짓 한 뼘쯤 떠올라 있다

배영옥

무엇이나 여러 차례 사용한 것이면 자국이 생긴다. 더 오래되면 움푹 파인 흔적이 남는다. 화장실 손잡이는 말할 나위 없겠지. 그처럼 닳고 닳아 둥근 자국이 난 곳 또 어디 없을까. 정작 우리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드나드는 곳은 어디일까. 머릿속 아닐까. 하루 한 시간에도 수백 번 생각의 창들이 수시로 열리고 닫히는 곳. 만약 머릿속에 중문이 있다면 그 문의 손잡이는 얼마나 닳고 닳았으랴. 우리의 생각이나 고민들이 잠들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밀고 드는 문.

그리하여 머릿속 중문 손잡이에도 둥글게 흔적이 나 있다면, 나 그 흔적들을 고이 받아들이리라. 더구나 그 흔적들이 리비아 유혈사태니 침출수니 치솟는 물가니 이런 단어들이 아니라 카프카나 릴케, 틱낫한의 말씀들이 들락거려 움푹 패었다면 나 은총인 듯 받아 안으리라. 가령 "우리가 진정으로 꽃 한 송이를 깊게 만지면 우주를 만지는 것이다"와 같은 말이라면, 아아 그런 아름다운 흔적이라면 머리가 총알받이가 되어도 좋으리라.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마포구청장 후보인 박강수 국민의힘 후보가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와 관련해 '마포는 4년 동안 큰 안전사고가...
온라인에서 퍼진 '2026 대한민국 주요인물 연봉' 표에서 삼성전자 노조위원장 최승호의 연봉이 9억원으로 나타나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이는...
충남 당진에서 20대 A씨가 반려견을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경찰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그를 붙잡았다. A씨는 낮에는 반려견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를 수상했으며, 가수 이재가 시상식에 참석..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 배너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