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거 신랑이 심은 목련이 활짝"
간밤에 보일러 가동으로 덥다는 걸 느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파트 앞마당 뜰에 연둣빛 이파리가 더 선명해졌다.
여기저기 매화, 산수유, 개나리가 지천에 널브러져 있는 봄이 왔나 보다. 라일락 꽃망울도 웃기 시작했고 담 모퉁이 옆 내 키보다 더 큰 목련나무엔 백조가 수없이 앉아 있다.
백옥같이 하얀 꽃잎들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하얀 순백의 색으로 뒤덮어야 하는데 마음은 왠지 슬퍼진다. 목련 나무를 식수한 주인공은 내 친구 남편이고 식수한 뒤 얼마 안 돼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가버렸다.
작년까지만 한두 송이 피던 꽃들이 올핸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활짝 펴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사로잡지만 내 친구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빙 돌아다니곤 한다. 친구에겐 사연이 있는 목련이지만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겐 그저 봄을 알려주는 꽃이다. 벌써 한두 잎 떨어지는 꽃잎을 밟으면서 메시지를 전송해본다.
'친구야! 너거 신랑이 심어놓고 간 목련나무 가지에 백 마리 남짓 백조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있데이~.'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 복숭아나무마다 분홍물 올라
"사부인! 꼭 오세요. 요즘 향긋한 미나리가 제철이잖아요."
"네, 이번에는 저희가 대접할게요. 그냥 미나리하우스에서 만나죠?"
"아이고, 사람들 북적이고 정신도 없어요. 그냥 저희 집으로 오세요."
뒷간과 사돈댁은 멀어야 한다는 옛말은 너무나 어려운 사이이기에 생긴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화장실도 집안으로 들어왔고 사돈지간도 자식을 나누어 가지는 아주 가까운 사이, 아니 친구 같은 지인으로 변해간다.
아지랑이 일렁이는 봄 언덕을 가르며 청도 사돈댁으로 향했다. 아직도 개발이 덜 된 상태인지라 흙길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버섯하우스, 양파 밭, 복숭아 과수원, 감나무와 마음껏 뛰어놀면서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닭과 오골계도 보였다. 한 치의 소홀함도 용서치 않는 두 분의 부지런함이 한적한 시골의 평화로움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안사돈의 정성스런 음식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 시원한 기러기육회, 미나리에 묵은지, 삼겹살, 그리고 기러기탕, 넷이 먹다가 한 사람 없어져도 모를 맛 속에 늘어나는 건 빈 소주병뿐이었다.
마침내 가방에 하나 가득 넣어갔던 부담감, 아니 걱정 따위는 모조리 잊은 채 챙겨주신 버섯, 계란, 오골계 알, 기러기 알, 냉이, 달래 등 박스 가득 싣고 맨발로 걸어도 좋을 것만 같은 매캐한 흙먼지 이는 시골길을 뒤로한 채 돌아오는 가슴 속에는 같은 부모들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밤이면 마당 가득 별들이 마실 오고 새벽이면 소의 워낭소리에 굴뚝새가 눈 비비는 곳, 불이 났는지 중학생 까까머리가 되어버린 산 위로 해는 벌써 넘어가 버렸다.
곧 연분홍 복사꽃이 피려고 복숭아나무가지마다 분홍물이 올라있었다. 올봄 복사꽃이 필 무렵이면 사돈 내외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그날만큼은 옛 동무가 되어서 이야기꽃을 맘껏 피워보리라.
조숙자(대구 달성군 옥포면)
♥ 진달래꽃 많이 먹으면 입술이…
금년은 예년에 비해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워서인지 한층 더 봄이 그리운 것 같아! 이제나 봄이 올까? 저제나 꽃이 필까? 기다리는 마음 애타는데 꽃샘추위까지 들락날락 애간장을 녹인다. 어제는 기다리다 못해 비슬산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참꽃이 언제쯤 피느냐고! "예~! 올해는 아직 꽃망울도…." 말끝을 흐린다.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정도는 늦는가 보다. 그나마 산수유에 이어 신천이 비좁도록 샛노랗게 핀 개나리가 있어 봄인 양 여겨진다.
엊그제에 이어 오늘도 내 옆자리는 비어 있다. 3일 전 하교 때까지만 해도 "집에 일찍 가봤자 일만 하지" 하고 축구시합을 제안, 어중이떠중이를 끌어다 놓고는 혼자 3골이나 넣었다고 기고만장하던 녀석이 내리 3일째 결석이다. 어제 선생님 심부름차 녀석의 집에 다녀온 영자는 "예! 엄청 아픈가 봐요!" 하고는 알듯 모를듯 같잖은 표정에 입이 한발이다. 하긴 시골 촌구석이라 변변한 치료는 물론 간단한 상비약조차 없다 보니 별것 아닌 병도 재발 등으로 길어지기가 십상이다. 녀석 또한 앞으로 며칠이나 못 볼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다음날 우리들의 그런 예상을 깨고 녀석이 출석을 했다. "승재야 괜찮아!" 하고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녀석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너저분한 입성이야 촌구석이다 보니 그렇다손 치고 누렇게 뜬 얼굴은 물론 입술까지 까맣게 죽어있다. 한눈에 봐도 곧 죽을상이다. 담임선생님까지도 그런 녀석이 불쌍한지 빨리 집에 가란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슨 병이기에 달랑 삼일 만에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로부터 수년 후 온 산천이 진달래꽃으로 사태가 이는 4월 말경 초등학교 동기회를 가질 때였다. 이런저런 기억을 되살리는 중에 진달래꽃 이야기에 재미가 쏠려 "야~! 그 진달래꽃 많이 먹으면 입술이 시퍼렇게 변하지!" 하며 저마다 한마디씩이다. 그 와중에 옆자리에 승재가 보이기에 "야~ 너 옛날 아플 때 입술까지 까맣게 죽었었지?" 하고 물었더니 뜬금없다는듯 녀석의 표정이 묘하다. "진달래 먹으면 입술이 변한다며." 녀석의 연기력이 명배우를 뺨치고 그 위장술에 그저 입이 벌어진다.
이제는 곧장 봄이다. 그동안 회색으로 거칠었던 산야는 초록과 화사한 꽃들로 변신을 꾀할 것이며 유원지와 꽃으로 이름난 명산들은 상춘객으로 넘쳐날 것이다. 나 또한 장롱 깊이 넣어 두었던 카메라를 손질하여 비슬산이 비좁도록 붉게 흐드러진 진달래꽃 물결을 만끽하려 떠나볼까 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시작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노래하듯 흥얼거리며!
이원선(대구 수성구 중동)
♥ "엄마도 이젠 들꽃 아닌 봄꽃으로"
며칠 뒤 결혼식을 앞둔 막내 이모가 우리 집에 놀러왔습니다. 모두 모여 옛날이야기를 하다 앨범을 보았습니다.
그 앨범 속에서 24살 때 목련같이 순수하고 예쁜 어머니의 처녀적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딱 내 나이였던 어머니의 봄꽃같이 화사한 모습이 지금의 들꽃처럼 생활력 강한 모습과는 사뭇 달라 어색했지만 가족을 위해 들꽃이 되기를 자처한 어머니가 안쓰럽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항상 여자로서의 봄꽃 같은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을 텐데도 그것을 포기하고 들꽃으로 20여 년을 사셨던 어머니. 그래도 제 눈에는 어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예쁩니다. 이제는 제가 어머니의 목련 같은 모습을 되찾아드리겠습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어머니와 함께 꽃 시장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봄꽃을 한 아름 선물해 드려야겠습니다.
김면관(대구 북구 학정동)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장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대구백화점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성백광(대구 북구 구암동)
다음 주 글감은 '우리 집 애완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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