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⑤1985년 통합우승의 원동력

김영덕 감독 "우승이라면 뭐든지…"

1985년 9월 21일 통합우승한 삼성 김영덕 감독 등 선수단이 대구 시민들의 환호 속에 개선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1985년 9월 21일 통합우승한 삼성 김영덕 감독 등 선수단이 대구 시민들의 환호 속에 개선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삼성 라이온즈 김영덕 감독은 1985년 9월 17일 부산에서 롯데를 7대4로 잠재우고 통합우승을 확정 지은 뒤 "밀린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고 했다. 긴 압박에서 벗어난 그에겐 잠(휴식)이 필요했다.

프로 원년인 1982년 OB 사령탑으로 우승한 후 두 번째 정상에 선 김 감독은 당시 "OB 때의 우승보다 훨씬 감격적이다"고 했다.

1985년 통합우승은 김 감독에겐 필승의 과제였다. 그해 전기리그를 우승했지만 김 감독은 성이 차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후기리그까지 제패해 '통합우승'이란 결과물로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당했던 수모를 씻어내고픈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매 경기 '이기는 야구'에 골몰했다. 호쾌한 야구를 기대한 대구 야구팬들은 김 감독의 '선이 가는 야구'에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야 우승할 수 있다'는 지론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후기리그 막판, 매직넘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을 때도 김 감독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시즌이 끝날 때쯤 김 감독은 "잠이 오지 않고 소화도 안 됐다. 체중은 2㎏이나 빠졌다. 경기에 들어가면 담배 두 갑을 피웠고 커피 7, 8잔을 마셔야 가슴이 진정됐다"고 했다.

8월 25일 청보를 꺾고 선두에 오른 삼성은 9월 14일까지 거침없는 11연승을 구가했다. 이미 삼성의 자리를 넘볼 상대가 없었지만 김 감독은 승리를 향해 앞만 바라봤다. 그달 11일 김시진과 원투펀치를 이뤘던 김일융이 무릎부상을 당해 15일 광주 해태전에 내보낼 선발투수가 없었다. 김 감독은 대구에 잔류시킨 황규봉을 급히 호출했다. 황규봉은 당시 오른쪽 새끼발가락 골절상을 입어 온전치 못한 몸이었다.

그날 황규봉은 8회까지 11안타를 내주며 5실점했지만, 마운드를 오랫동안 지켜주기만 하면 됐다. 타자들이 알아서 점수를 뽑아줬기 때문이다. 김근석(자영업) 씨는 "연승이 이어질 땐 뒤지고 있어도 진다는 생각을 안 했다. 기세가 등등했고, 누구라도 타석에 들어서면 안타를 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고 당시 팀 분위기를 전했다. 김근석은 "타석에 들어서려면 감독의 눈에 띄어야 했다. 그래서 방망이를 들고 감독 앞에서 연습 스윙을 하고, 화장실 갈 때도 감독 앞을 지나가며 '나도 있다'는 걸 알리려 부단히 애썼다"고 회상했다.

그날 삼성은 프로사상 첫 전원 안타-전원 득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12연승에다 매직넘버 2를 남긴 삼성은 9월 17일 롯데를 누르고 13연승과 동시에 후기리그를 제패했다.

그해 감독의 우승 열망은 코치와 선수들에게도 전달됐다. 당시 수석코치였던 정동진(전 삼성 감독) 씨는 "그해 코치와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기까지 술 마시는 걸 자제하며 경기력을 높이는 데만 골몰했다"고 했다.

선수들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며 더 강한 사자가 되고자 했다. 대구MBC 홍승규 야구해설위원은 "팀 내 선수들을 보면 모든 포지션이 최강의 멤버들이었다. 그런 선수들과 매일 얼굴을 맞대며 서로의 장점을 배웠다. 모자라는 건 물었고, 부족한 건 홀로 연습을 했다. 긴 페넌트레이스였지만 아무도 아프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만큼 경기가 뛰고 싶었고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정신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삼성의 우승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고 했다.

당시 팀의 주장이었던 함학수(전 강릉고 감독'어학원 경영) 씨는 "위기 때면 고참들이 앞장섰고, 후배들이 따르며 팀워크를 완성해갔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고 해도 타격은 슬럼프가 오게 마련이란 걸 미국 전지훈련서 배운 선수들은 타격이 부진할 땐 주루에 신경 쓰며 경기를 지배했다. 당연히 뛰는 연습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능력과 개성이 강한 삼성 선수들은 당시 자기 할 일에만 열중한 경향이 많았다. 주장으로서 그는 선수들의 자율을 보장해줬지만 강한 힘을 모으지 못할 땐 목소리를 높였다. 함 씨는 "해태나 롯데는 김성한, 조성옥 등 군기반장이 위계질서를 세우며 팀의 기강을 잡았다. 그러나 삼성은 이런 면에서는 분명히 느슨했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도 1985년도엔 팀을 위해 조금씩은 자신을 버리고 팀을 생각했다"고 했다.

삼성은 1985년 감독의 우승 열정을 바탕으로 코치진과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돼 전무후무한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77승1무32패. 승률 0.706로 2위 롯데(승률 0.536)를 18.5경기 차로 따돌린 완벽한 우승이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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