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에게 안경을 손질해주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몰라요. 어둠에서 밝은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좋아합니다."
대구 달서구 본리동 달서종합시장 모퉁이에서 20여 년째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원태(46) 씨. 그는 시장 사람과 이웃들에게 마음씨 좋은 안경사 아저씨로 통한다.
그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아침 일찍 안경도구를 챙겨 대구보훈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보훈병원 안내데스크 옆에 탁자를 설치해 입원환자와 외래진료환자들에게 안경을 세척해주고 수리해주기 위해서다. 김 씨의 안경 봉사는 벌써 6년째다.
"어르신들은 안경 하나에도 감동을 해요.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고 외로움이 깊어서인지 렌즈만 깔끔하게 씻어줘도 아이들처럼 생글생글 웃음이 가득해져요."
그는 보훈병원에 한 번 안경봉사를 가면 어르신 200여 명의 안경을 손질해준다. 때묻은 렌즈는 깨끗하게 세척해주고 고장난 안경테는 말끔하게 수리한다. 또 렌즈가 오래돼 시력이 안 맞으면 교정하도록 조언도 하고 어르신한테 오래 사시라는 인사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처음에는 보훈병원 입원환자만 대상으로 안경봉사를 했다. 하지만 이 병원 외래진료환자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면서 안경봉사 대상이 확대됐다. 심지어 경북 의성이나 경남 산청 등 먼 곳에서 오는 외래환자 상당수는 안경수리를 받기 위해 봉사 날짜에 맞춰 약을 타러 오기도 한다.
"안경봉사를 하는 날은 어르신들과 무언의 약속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사정상 제 날짜에 못 나가고 하루 일찍 갔는데 어르신들의 항의가 많았고 외래환자들의 실망도 컸어요. 이후로는 꼭 정해진 날에 봉사 약속을 지키고 있죠."
그는 안경봉사를 받은 어르신들의 고맙다는 전화가 올 때 큰 보람을 느끼지만 안경 수리를 받으며 살갑게 지내던 어르신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할 때는 마음이 아프다.
"봉사하는 것은 나뭇잎과 같습니다. 나뭇잎은 세상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할것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커다란 그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훈병원 안경봉사 이외에도 형편이 어려운 이웃의 소년소녀가장들에게 3년째 안경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본리·두류·감삼·성당동 일대 소년소녀가장의 시력보호를 위해 매달 15명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있는 것.
"힘들게 사는 소년소녀가장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시력은 나쁜데 안경을 맞출 형편이 못 되는 어린이도 많고요. 심지어 안경 착용 후 2년 넘게 렌즈를 교체하지 않아 시력이 크게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에게 눈이라도 제대로 보호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대구시안경사회 달서구 분회장이기도 한 그는 매년 9, 10월 달서구청 대강당에서 소년소녀가장 200여 명의 시력검사를 통해 70~80명에게 무상으로 안경을 맞춰주고 있다. 이 봉사는 그가 분회장을 맡으면서 다른 안경사 5명과 의기투합해 13년째 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소년소녀가장 안경 맞추기 행사가 장소 문제로 쉽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황대현 구청장이 흔쾌히 승낙해 지금까지 연례행사로 굳어졌거든요. 구청에서 소년소녀가장 안경 맞춰주기 행사는 아마 대구지역에서 유일할 겁니다."
칠곡 왜관이 고향인 그는 같은 고향 사람인 아내 김윤태(46) 씨와 결혼해 1992년 첫 안경점을 열었고 한때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반듯한 안경점으로 키웠다. 아내 김 씨도 남편이 안경봉사하는 일을 뜻깊게 생각해 항상 따스하게 뒷바라지하고 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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