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불안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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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 자체가 불안'이듯 나는 늘 불안(不安)에 시달린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이 깊어 새벽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되뇌며 억지로

잠이 들 때까지, 상상해 낼 수 있는 온갖 기우(杞憂)에 짓눌려 하루를 보낸

다. 아, 이것이 진정 갱년기 증세인가.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도 딱히 그

것만은 또 아닌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난 삼십여 년간 거의 하루

도 빠짐없이 온갖 불면(不眠) 증세를 다 겪어왔던 것이다.

지금도 조간신문을 읽은 뒤 양치를 하고 잠드는 것은 기본이고, 수술을 위

한 마취, 수면제 또는 몸살이나 감기약을 먹지 않고서는 스르르 쓰러지듯

잠든 기억이 거의 없다. 술을 마시고 난 뒤 차오르는 열을 주체하지 못해 온

집안 물청소는 다반사, 스트레스로 꼬박 사나흘 동안 눈 한 번 못 붙여 본

적은 부지기수다. 불면을 겪어 본 사람은 다 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

다'는 말의 절절함을.

증세는 열두 살의 어느 날부터 시작되었던 듯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살던 집마저 내주어야 했던 우리 식구는 온 동네 사람들과 공장 직공들이

여름 내내 변두리의 작은 땅을 사서 지어준 방 두 칸짜리 슬레이트지붕 집

으로 옮겼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이삿짐이라곤 칠남매의 책가방

과 옷가지 등 리어카 하나에 실린 게 전부였고 고추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코스모스가 화사하게 피어 있는 산밑 길을 큰오빠가 끄는 리어카를 따라

우리는 터덜터덜 걸어갔다.

새집으로 이사와 뒤척뒤척 잠 못 이루고 있던 그날 밤 나는, 늦더위가 가시

지 않아 열어놓은 방문 밖 별들이 얼비치는 투명한 백열전구를 바라보다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전깃줄이 불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슬레이트 처마 밑

나무기둥에 어설프게 얼기설기 얽은 전선이 누전된 것이었다. 그때 후다닥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불! 불! 불!' 외쳤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오빠들이

재빠르게 두꺼비집의 차단기를 내려 별 탈은 없었지만, 그날부터 나는 식

구들보다 단 한 번도 일찍 잠든 기억이 없다.

문은 제대로 잠갔나, 가스 누출은 없을까, 엘리베이터가 왜 이렇게 흔들리

지, 볼에 난 이 뾰루지가 혹시 암은 아닐까, 오늘도 온갖 기우에 시달리며

나는 하루를 잠식시키기에 여념이 없고, 불안한 영혼 또한 얼마 전 무너진

호국의 다리나 흔들거리는 테크노마트처럼 간들간들 거기에 매달려 지금

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박미영(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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