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종양 수술 받은 김용자 씨

폭력 남편·뇌종양 보다 더 심각한 건 '마음의 병'

뇌종양 제거술을 받은 김용자(가명) 씨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기자가 질문을 하면 고개만 끄떡일 뿐이었다. 언니 승자(가명) 씨는
뇌종양 제거술을 받은 김용자(가명) 씨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기자가 질문을 하면 고개만 끄떡일 뿐이었다. 언니 승자(가명) 씨는 "동생은 몸보다 마음에 먼저 병이 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성일권기자

김용자(가명·43) 씨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두려웠다. 발자국 소리가 커지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용자 씨는 '매맞는 아내'였다. 그런 남편 곁을 떠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 믿었다. 두 자녀와 함께 남편을 떠났지만 문제는 건강이었다. 지난달 머리 속에 지름 5㎝의 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용자 씨는 '행복'이라는 말이 너무 낯설다.

◆"아픔을 느낄 여유도 없어요"

19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6층 입원실. 침대에 앉은 용자 씨는 고개를 숙인 채 간호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는 2주 전 뇌종양 제거술을 받은 그의 머리에서 실밥을 뜯어냈다. 소독약을 바르고 실밥을 제거하는 일이 고통스러울 법도 한데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용자 씨에게 지금 아픔과 고통을 느낄 만한 여유가 없는 탓이었다.

그는 1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만 끄떡일 뿐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용자 씨의 삶을 대신 설명해준 것은 첫째 언니 승자(가명·51) 씨였다. "내동생은 가슴속에 상처가 가득해요." 승자 씨도 지난달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이지만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용자 씨의 둘째 딸(22)과 승자 씨는 병원에서 24시간 교대로 지내며 간호하고 있었다.

용자 씨의 고향은 인천이다. 뇌종양으로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다면 대구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천에서 살았던 때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과 결혼할 때만 해도 행복한 삶을 꿈꿨다. 예의 바르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남편이 좋았다. 하지만 집에서 남편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고통만 가득한 삶

그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마음 편하게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법적으로 아직 부부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남편과 떨어져 산 지 벌써 4년째다. 2008년 용자 씨는 전세 보증금 1억원과 주변에서 빌린 돈 2천여만원을 보태 북한 제품을 수입하는 작은 무역회사를 차렸다. 남동생의 소개로 알게 된 동업자와 사무실을 차리고 사업자등록까지 마치는 등 1년 동안 사업준비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됐고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문을 닫아야 했다. 그들 손에 남은 것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방뿐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강했다. 그는 다시 일어서 언니와 함께 인천에서 분식 포장마차를 열었다. 백화점 인근에 터를 잡고 장사를 하니 하루 매출이 15만원까지 올라갈 때도 있었다. 포장마차 일도 오래가지 못했다. 구청 단속이 심했고 인근 상인들과 자리다툼이 빈번했다. 지난해 4월은 그들에게 힘겨운 봄이었다. 승자 씨는 "구청에서 마차를 찾아가려면 과태료 20만원을 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더이상 싸울 힘이 없어 마차를 되찾지 못했어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포장마차를 접은 뒤 식당에서 서빙을 했던 이들은 지난해 11월 경남 합천으로 향했다. 메주 만드는 솜씨가 있었던 승자 씨와 함께 아는 사람 소개로 된장 공장에서 몇 달간 일하며 돈을 벌 요량이었다. 용자 씨가 인천에서 대학을 다니는 둘째 딸을 혼자 두고 합천에서 일해도 매달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이 조금 넘었다.

◆희망이 있을까요

지난달 24일 새벽, 언니는 용자 씨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 잠에서 깼다. "자꾸 괴물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더니 밤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어요." 승자 씨는 동생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그때 알아차렸다. 다음날 동네 병원에서 "중풍이 의심된다"는 말을 듣고 대구의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뒤 곧바로 입원했다. 지름 5㎝의 악성 종양이 용자 씨의 머리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종양 제거술을 받은 뒤 용자 씨는 입을 닫았다. 가슴속에 곪아있는 상처도 종양과 함께 사라지면 좋으련만, 마음의 상처는 수술 뒤 더욱 덧났다. 심각한 우울증 때문에 용자 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정신과 진료까지 받고 있다. 대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은 방학이 되면 인천 남동공단 공장에서 일해 다음 학기에 쓸 생활비를 벌었다. 용자 씨의 딸은 다음 학기 준비를 포기한 채 대구에 와 엄마 간호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이들 가족의 미래는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다. 1천만원 가까이 쌓인 병원비도 문제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얼룩진 용자 씨 마음의 병이 언제 나을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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