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맛있게 먹기] 연극은 어떻게 만들어질까?-④ 연출작업

관객이 연극을 통해서 연출가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 흔적은 공연되는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도 처음에 작가가 쓴 의도와는 달리 연출의 손을 거치면서 변화하며 그 주제를 직접 표현하고 있는 배우를 선정하는 작업부터 배우의 연기표현 방법 등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어느 것 하나 연출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그만큼 연극을 제작할 때 연출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공연의 막이 오르고 나면 연출은 물거품이 사라지듯이 자신의 존재를 감춘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연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물거품이 물과 함께 존재하며 언제나 다시 나타날 수 있듯이 연출은 늘 연극과 함께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 속에 배우의 연기 속에 무대세트와 음향, 조명 등 어느 곳 하나도 빠지지 않고 연출의 생각과 의도가 깃들어 있기에 연극을 이야기할 때 연출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연극에서 현대적 개념의 독립된 연출이 등장한 것은 작가나 배우의 역사에 비한다면 그 역사가 터무니없이 짧지만 그 중요성은 작가, 배우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변화했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서는 때때로 작가와 배우의 중요도를 뛰어넘는 역할이기도 하다. 다만 살아있는 배우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는 연극의 특징 때문에 배우의 연기까지도 자신의 의도대로 더 정확히 조율할 수 있는 영화감독과 같은 절대적 위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극 제작과정에서 연출가의 역할과 힘은 그 어느 역할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이는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 결국 작가가 쓴 작품을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이 직접 볼 수 있도록 연출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가에게는 연출력 외에 수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 연출력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연극의 전반적 역할을 모두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먼저, 연출가는 희곡을 이해하고 분석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거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자신의 의도를 담아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적절한 배우를 선정하고 그 배우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작품에 맞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도록 조언하거나 지시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출의도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인류의 역사와 비슷한 연극의 오랜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연극의 양식 혹은 형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형식이나 변형된 형식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장치들, 즉 무대, 음향, 조명, 의상, 분장 등의 기술적인 부분들을 정해서 각 담당 기술자들과 협의하거나 지시해야 한다. 이렇게 연출이 맡는 역할은 연극 전반적으로 폭이 넓고 양이 많다보니 조연출이라는 역할을 두고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연출가는 흔히 알고 있을 법한 감독으로서의 지휘력과 추진력 외에도 작가에게 필수적인 상상력과 창의력, 배우의 연기술에 대한 이해, 조명과 음향 등의 기술적인 지식, 음악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소양과 이론적 지식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해서는 안 되는 멀티 플레이어면서 자신의 세계관이나 가치를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로 드러낼 수 있는 창조자로서의 능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수치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보더라도 그런 능력을 모두 가졌다고 할 만큼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풍부한 경험이 없다면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연극은 위에서 말한 연출가의 능력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는 것은 확실하다. 연습계획부터 연습과정 등 거의 모든 부분을 연출이 지휘하고 관리하며 책임지기 때문이다. 단체 스포츠 종목에서 성적이 나쁠 때 감독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처럼 연극에서도 작품 성공에 대한 열쇠와 책임 모두 연출가에게 많은 부분이 맡겨져 있는 것이다.

제작자와 함께 연출가는 공연작품의 총책임자로서의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그에 따르는 막중한 의무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연출이라는 역할은 매력적이고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안희철(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