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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의 시와 함께]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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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

- 김경주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영혼에 처벌 받을지 모르지만 시체를 사랑해서 묻지 못하는 사제처럼 불가능한 영혼을 꿈꾼다 환영에 습격받은 자로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몇천 년 전부터 살았던 바람이 내 머리칼을 멀리 데리고 날아갈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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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은 발코니에 썩 잘 어울려요. 거실 여기저기 옮겨보다가 마뜩찮아 나간 곳이 발코니였어요. 발코니에 앉는 순간 그 어느 자리보다 꽃이, 붉은 꽃이 명랑해졌어요. 남쪽을 온통 봉사하고 있었어요. 그거 불가피라 말해 볼래요.

"비가 오는데 창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어서 시인은 적고 있네요. 사랑이 진행 중일 땐 온통 안개예요. '불가피'라는 단어가 이 시의 핵심어. '피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가 아니라, '피할 수 없을 만큼 네가 번식하고 있어서' 일까요? 결국 너는 내게 불가피한 사람이라는 말을 이렇게 하는 거지요.

불가피하다면 적절하게 마주하라. 저 발코니의 꽃처럼 사랑도 한번쯤 바깥으로 몰아내보세요. 거리(distance)를 통해 다시 서로의 불식을 보세요. 무자비하게 번식한 감정의 불순물들, 아웅다웅의 자리에, 지리멸렬의 자리에, 새로이 성찰의 등 하나 거세요. 새삼 불가능한 영혼 하나 보세요. 붉은 꽃이 불가피를 알게 해줬어요. 실인즉, 우리 삶의 총체가 불가피예요. 그러니 꽃들을 미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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