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헤엄치며 진화하다, 당신이 볼 때만 잠시 멈춘다"

AA갤러리 임동훈전

임동훈 작
임동훈 작

전시장에 들어서면 무언가 희뿌옇게 움직이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틀림없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이 원형의 물질은 캔버스 위를 느리게 유영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잠시 멈춘다. 그러다가 아무도 없는 전시장 안에서 움직이며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착시를 주는 작품은 10월 8일까지 AA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임동훈의 작품이다. 재료에 관한 애착이 많은 작가가 이번에 선택한 재료는 실리콘.

작가는 가장 단순한 형태인 원형을 자연물로 염색했다. 여기에다 실리콘을 한 겹 입히고, 그 위에 또 원형을 올린다. 이처럼 실리콘을 여러 겹 덧입힌 이 작품은 실리콘의 재료 특성상 독특한 느낌을 선사한다.

실리콘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시간이 작품에 스며들어 있다. 실리콘이 가지고 있는 유동성과 결박, 투과와 차단 등 이중적 성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듯한 원형을 시간의 덫에 가두고 있다. 이런 원형의 여러 층들은 유동적인 형태의 흐름을 만들어 원시적인 생물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작업과 자신의 관계를 반성하게 하는 문화적 충돌을 경험한다. 여기에서 작가는 일상의 사소한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면에 시선을 두었다.

남인숙 미술평론가는 "임동훈의 가장 큰 장점은 재료와 물질적 탐구로부터 자신의 작업을 시작한다는 점이다"고 말하면서 "물질로부터, 재료로부터 자신의 태도를, 자신의 삶을, 세상과 나누는 자신의 대화를 구체화시키는 방식"이라고 평했다.

작가가 만들어둔 시간의 층위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미묘한 색감의 변화와 실리콘의 느낌은 찬찬한 작가의 내면을 향한 시선을 만나보는 듯하다. 053)768-4799.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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