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취때문에 못살아"…서구 주민들 수년째 고통

"인근 공단탓" 조사 요구…구청 민원 뒷짐 "오염기준 범위 안넘어\

대구 서구 중리동에 사는 김모(52'여) 씨는 요즘 새벽 운동을 하지 않는다. 아침에 아파트 베란다 문을 열면 매캐한 냄새 때문에 목이 아파 오기 때문. 중리동에서 26년 넘게 산 김 씨는 "꼭 연탄이 타는 것 같은 매연 냄새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난다. 최근엔 이 냄새가 더 심해졌고 냄새 때문에 못살겠다며 이사 가는 주민들도 많다"고 불평했다.

서구 평리동과 중리동 주민들이 인근 공단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악취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평리4동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손영숙(41'여'동구 신암동) 씨는 "집에 있을 때는 아무 냄새가 안 나는데 회사에만 오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소독약 냄새 같은 이상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이런 냄새가 더 심해지고 머리가 아플 정도여서 일을 못 한다"고 털어놨다.

주민들은 야간작업을 많이 하는 일부 공장에서 밤새 연기를 뿜어내 최근 1, 2년 새 악취가 더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서구 이현동과 중리동, 평리동 주변에는 서대구산업단지의 1천460여 개 공장과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의 120여 개 염색공장이 있다.

최근 1, 2년 새 악취가 더 심해지자 주민들은 서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구청은 주거지역에서 측정한 대기오염물질이 배출허용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며 손을 놓고 있다.

서구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공장 악취 관련 민원은 43건. 이는 지난해 1년간 접수된 전체 민원(35건)보다 많다. 이달 24일에는 달서구 용산동 주민 10여 명이 서구 염색공장과 주물공장에서 발생한 냄새를 문제 삼으며 서구청에 항의하기도 했다.

특히 이달 20일 서구 주민 88명은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대기오염 피해를 밝혀달라'며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검찰은 주민들이 고소할 업체를 확정하지 않은데다 구체적인 피해 상황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고소장을 반려했다. 주민대표를 맡고 있는 평리천주교회 박광호 주임 신부는 "수십 년 동안 인근 공장에서 뿜어댄 대기오염물질 때문에 주민들의 코가 마비될 정도다. 대기오염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외면하지 말고 어느 공장에서 어떤 오염물질이 발생하는지 주민들을 위해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서구청은 이달 5일부터 7일까지 서대구공단과 염색공단 인근 주거지역 2곳을 조사 지점으로 골라 대구시보건환경연구원에 '악취 조사'를 의뢰했다. 시보건환경연구원은 황화합물과 알데하이드 등 악취 물질 9종을 검사한 결과 모두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용 기준을 넘지 않는다고 이달 17일 발표했다. 서구청 환경관리과 관계자는 "냄새의 원인이 염색 공장에서 직물을 펴서 말리는 작업인 '텐타 공정'을 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의뢰했지만 배출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며 "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서구에 있는 152개 염색공장에 악취를 줄여달라는 공문을 보내 협조를 구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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