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는 못 산다. 질 경우 이길 때까지 계속 한다. 축구는 즐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 수는 있어도 '근성(깡)'에서 밀리면 용납 못 한다. 경기 후 바로 '원산폭격'(뒷짐을 진 채 몸을 굽혀 머리를 땅에 박는 기합)이다. 담배 피우는 선수도 즉각 퇴출이다. 축구는 체력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군부대 축구가 아니다. 문깡외국어학원 축구단 '문깡FC' 얘기다.
학원 직장인 축구단 문깡FC가 전국 최고 자리에 우뚝 섰다. 이달 초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제1회 대통령기 전국 축구 한마당 직장부에서 우승했다. 전국의 16개 팀이 겨룬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며 창단 후 처음으로 전국 최고 자리에 올랐다.
학원 축구팀이 전국 최강이 된다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이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 단합 등 직원들의 취미로 할 만한 학원 축구단이 '강호의 고수들이 즐비한' 전국 대회 우승이라니. 그런데 '뭐든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학원 대표이사이자 문깡FC 구단주인 문강명(49) 씨를 만나보면 수긍이 된다. 이유는 단 하나. 이왕 시작했기 때문이다. 뭐든 시작하면 최고가 돼야 하는데 축구를 시작한 만큼 역시 최고가 돼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막무가내식 최고 지향주의는 아니다. 실력이 달려 지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 노력으로 만회한다. 그러나 근성 부족으로 지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문 구단주에게 있어 '깡'이 곧 '철학'이다. 학원 이름도 '문깡'이다. 실제 대회 때 근성에서 졌다고 생각되면 경기 후 곧바로 전원 원산폭격이다. 감독이든 선수든 쭈뼛하는 사람도 없다. 구단주가 제일 먼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박아 버리기 때문이다.
올해 대구의 한 축구 명문고와의 연습경기 때도 원산폭격을 해야 했다. 올봄 첫 번째 연습경기에서 1대2로 진 뒤 다시 지면 모두 원산폭격 하기로 했는데 또 1대3으로 졌기 때문이다. 이때도 문 구단주가 가장 먼저 머리를 박았다. 이후 대통령기 전국대회에 나가기 전인 8, 9월 다시 도전한 두 차례 연습경기에선 각각 2대0, 1대0으로 결국 이겼다. 또 지역 한 대학 축구부와의 경기에선 8대1 대승을 거뒀다.
문깡FC의 '최강' 비결은 프로축구 선수 출신인 이근희(37) 감독의 체계적인 훈련과 선수들의 강한 체력, 우수 선수 보강, '깡'이다. 이 감독은 "대구의 고교 축구부와는 3년째 연습 경기를 해 오고 있는데 지난해까진 1, 2학년도 섞여 있는 팀이었지만 올해는 3학년 주전과 상대했는데 비슷한 실력을 보일 정도로 기량이 향상됐다"며 "정신 무장을 강조하긴 하지만 분위기가 전혀 살벌하거나 삭막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즐긴다"고 말했다.
축구단의 시작은 가벼웠다. 문 구단주가 축구광인데다 직원들의 단결과 화합, 직장 내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는 데엔 축구만한 게 없다는 신념으로 2000년 학원 내 축구단을 만들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훈련하고 자체 경기를 하는 등 조기축구회처럼 학원 내 직원 동아리 차원의 순수하게 즐기는 수준의 팀이었다. 그러나 2006년 대회에 첫 출전 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쉽게 생각하고 출전한 대회에서 2년 연속 고배를 마신 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낀 것. 이에 문 구단주는 2008년부터 선수 출신을 영입하는 등 본격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09년 대구'경북'강원지역 예선에서 1위로 전국 대회 본선에 진출했고, 지난해엔 공동 3위, 올해는 마침내 우승을 거머쥐었다.
문 구단주는 "단합 목적으로 만든 축구단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연간 축구단 운영 경비가 6억원이나 든다. 이렇게 일이 커지고 운영비가 많이들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1등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대로 안 돼 오기가 생겨 투자를 계속하게 됐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그러나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라 돌이킬 수 없다"고 했다.
문깡FC는 자체적으로 1~3부로 나눠 운영된다. 1군 16명, 2, 3군 각 12명 등 모두 40명. 내국인 강사, 외국인 강사 각 180명, 사무직원 150명 등 직원 500여 명 중 10% 가까이가 축구를 하는 셈이다. 3군은 취미, 2군은 조기 축구회 수준, 1군은 전국 대회 출전 팀이다. 물론 모두 학원 직원들이다. 강사도 있고, 일반직원도 있다. 2, 3군은 직원으로 뽑아 축구를 하지만 1군은 축구 선수로 뛸 수 있는 직원을 뽑아 학원 일은 하는 게 다르다.
이들은 수요일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강변축구장에서 함께 훈련한다. 1~3부 선수를 섞어 경기도 하고 훈련도 함께한다. 1군은 전국 대회, 2군은 대구지역 대회를 준비하는 훈련이다. 대회가 있을 땐 훈련이 주 3회까지 늘어난다. 1군은 현재 하나뿐인 전국 대회에 연간 한 번 참가하지만 앞으로 대회가 더 늘 것으로 보여 봄, 가을로 두 번 정도 참가할 계획이다. 2군은 대구지역 대회에 연간 두 번 정도 출전하는데, 대구FC 대구사랑리그, 생활체육 대구축구연합회장기 등 대구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할 정도로 막강 실력을 자랑한다.
이 감독은 "직장 내 스포츠를 통해 얻게 되는 끈기, 성실, 의욕, 매너, 도전, 단결, 열정, 근성 등 스포츠 정신이 회사 생활에도 연결돼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직장 내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는 데도 최고"라며 "여직원들은 축구를 하는 데 관심이 없지만 대회가 있으면 응원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여직원 200명이 응원하는 광경은 정말 가슴 벅차고 멋지다"고 했다.
한편 문깡외국어학원은 축구단에 이어 지난해 6월, 20여 명으로 구성된 '문깡 히트맨'이라는 야구단을 만들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주진우, 김민석 해명 하나하나 반박…"돈에 결벽? 피식 웃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