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길기행] <51>울진 신선계곡

그림처럼 아름다운 계곡길 30리, 옛 화전민들 거친 삶의 애환이…

신선계곡에 들어서는 길은 평탄하고 볕이 잘 들어 걷기 좋다.
신선계곡에 들어서는 길은 평탄하고 볕이 잘 들어 걷기 좋다.
신선계곡에 자리한 기암괴석의 하나로, 지세가 매우 가파르고 험준해 날아다니는 참새도 눈물을 흘리며 오른다고 해서
신선계곡에 자리한 기암괴석의 하나로, 지세가 매우 가파르고 험준해 날아다니는 참새도 눈물을 흘리며 오른다고 해서 '참새눈물나기'로 불린다.

엄마 엄마 울 엄마요/ 나를 낳아 키울 적에/ 진 자리 마른 자리 게래 골래(가려 골라) 키워 놓고/ 북망산천 가시더니 오늘이도 소식없네/어떤 사람 팔자 좋아/ 고대광실 높은 집이 부귀영화로 지내건마는/ 이내 나는 어찌하여 팔공산 짊어지고 낮자리 품 팔아 먹고/ 산천초목으로 후레잡고(후려쥐고) 지게로 살려러 거노/(중략)/ 가는 허리 바늘 같은 내 몸에 황쇠 같은 병이 드니/ 부리는 건 울 엄마요/ 찾는 거는 냉술러라(신세타령 중에서)

울진군 온정면 사람들 입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요는 유독 노동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모심는 소리와 논매는 소리, 벼베는 소리, 풀베기, 베틀노래, 화전가, 신세타령 등 직접 들여다보지 않아도 온정의 옛사람들이 살아온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힘겨운 노동은 산골짜기 길을 타고 세상으로 나와 가족들의 먹을거리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옛길이 현대인들의 멋진 산책로로 변했지만 그곳에는 옛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여전히 서려 있다.

온정면을 둘러치고 있는 백암산. 이곳 북쪽에는 깊은 골짜기가 흐르고 보기 드물게 온통 암벽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선시골 혹은 신선계곡이라고 부른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진사라는 사람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고 신선이 놀던 곳과 같다고 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신선계곡

선구리에 사는 화전민들이 온정에 형성된 장으로 향하던 길목이었던 신선계곡. 요즘은 생태탐방로로 새롭게 태어나 예전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전체 12㎞ 구간 가운데 6㎞를 나무계단으로 입혀 걷기에 편리하고, 나머지 6㎞는 자연 상태로 보존해 운치를 살렸다. 나무계단은 계곡 위를 구름처럼 잇고 있어 발아래로 펼쳐진 계곡의 절경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계곡은 볼 것이 많다. 노동에 지친 옛사람들의 애환을 잠시 달래주기라도 하듯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닭 벼슬을 닮은 '닭벼슬 바위', 신선이 목욕하고 놀았다던 '신선탕(다락소)', 기우제를 지냈다던 '용소', 지세가 험준해 참새도 눈물 흘리며 오른다는 '참새눈물나기', 호박의 모양새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호박소', '도적바위', '매미소(마음소)', '숫돌바우(선돌바우)' 등 탐방로가 조성된 '출렁다리'까지 끊임없이 볼거리가 이어진다.

이 같은 즐비한 비경에 전설 한 자락이 빠질 수 있을쏘냐.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신선계곡의 용소에 살던 이무기가 승천하는 것을 본 어부가 창을 던졌다. 창에 맞은 이무기는 요동을 치며 백암산 팔선대에 폭포를 만들고, 월송정의 용정에 우물을 만든 뒤 근처 바닷가에서 용바위가 돼 굳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선계곡이 '용의 전설'을 품고 있는 것은 계곡의 풍광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용의 단단한 비늘 같은 바위와 승천하는 몸부림을 보여주는 듯한 계곡을 감고 있는 거대한 암벽, 힘차게 휘어진 계곡의 형상이 독특하다.

비록 계곡은 좁지만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긴 골짜기로 이어져 있다. 또 골짜기 곳곳에는 200여 개의 폭포와 물웅덩이가 자리하고 있다. 소들은 검푸른 빛을 띨 정도로 수심이 깊어 보는 이를 아찔하게 한다. 소와 폭포가 워낙 많다 보니 이정표에 표시된 소를 제외하고는 주민들에 따라 이름이나 위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길은 물가를 시작해 절벽까지 이어지는데, 주로 물길을 아래로 두고 이어진다. 수시로 들리는 우렁찬 폭포소리에 발길은 숲을 따라가지만 눈길은 아득하게 내려 보이는 물길에 멈춘다. 6㎞에 이르는 나무 계단 생태탐방로는 아직 절반밖에 완성되지 못했지만 비경을 감상하고 걷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화전민의 길

신선계곡은 대한제국 말기 의병장 신돌석이 몸을 의탁할 정도로 그 끝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화전민들이 '독곡'이란 마을을 일구며 살았다. 독곡마을 주민들은 나무장작과 농작물 등을 지고 산 아래 마을로 내려와 생선이나 쌀, 등잔석유 등을 바꿔갔다. 독곡마을뿐만 아니라 온정 주변 마을은 경작할 토지가 부족해 화전을 일궈 생계를 잇는 가구가 많았다. 화전을 한 밭에서는 콩과 팥이 가장 많이 재배됐고, 주민들은 이를 장에 내다 팔아 가족 생계를 이었다.

박만숙(85) 씨는 "뭘 심어도 재질땅(상급)이 제일이야. 땅이 푸석푸석하고 참 좋아. 거짓말 안 보태고 서숙(조)을 심어놓으면 이것이 팔뚝처럼 늘어진다고. 산중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재질땅이 많아"라고 화전민 삶을 회상했다.

김태완(80) 씨는 "괭이 끝에 불나고, 사람 이마에는 땀이 난다고 했어. 그만큼 화전하는 게 힘들다는 걸 빗대서 하는 말이지"라며 고생스러웠던 삶을 떠올렸다.

화전민들에게 경작보다 힘들었던 것은 농작물을 노린 산짐승들의 습격이다. 깡통을 두드리기도 하고, 덫을 놓기도 했다. 화전민들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산짐승과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박 씨는 "곡식이 막 익어갈라고 할라치면 짐승들이 내려와서 깽판을 친다고. 고구마 심어놓으면 다 파먹어. 먹고만 가면 괜찮은데 온데 구불고 간다고. 밤새도록 장작 쌓아놓고 불을 때기도 하고 양철통 두드리며 쫓아내기도 했지. 또 짚이랑 대마초 껍데기를 갖고 '파대'를 만드는데, 그거 휘둘러서 '깡' 하고 소리 내면 총소리보다 더 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길은 외부에 물건을 팔고 구매하기 위한 통로이기도 했지만, 화전민들에게는 숯을 만드는 나무를 구하는 길목으로 더욱 유용했다. 화전민들은 밭을 일구는 것 외에 생계수단으로 대부분이 숯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런데 숯 굽는 일은 대단히 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고 한다. 서낭당에 치성을 올리는 것은 기본이고 음식까지 가려 먹어야 숯을 구울 수 있었다.

박 씨 "숯은 주로 뱃사람들한테 팔았지. 그거 팔아서 소금도 사고, 쌀도 사고, 고기도 사먹고 그랬다고. 만약 숯을 굽는 사람을 고용한 전주가 노임을 제대로 안 주면 전주집을 찾아가서 솥도 들고 나오고, 쌀가마니도 막 들고 오고, 돈 될 만한 것은 막 집어왔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옛사람들의 애환의 길이 새롭게 태어나다

계곡은 생태탐방로로 탈바꿈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사람들의 편한 걸음을 위해 비탈진 계곡에 파이프가 박히고 길이 놓이고 있다.

물길을 따라 풍광을 즐기며 오르기에 그만인 이 길은 "사람들은 어쩌자고 아름다운 계곡에 생채기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호소하는 것 같다.

울진군은 전체 탐방로 구간 12㎞ 가운데 절반만 사람의 손길을 닿게 할 계획이다. 탐방로 아래로 다니는 길은 물길을 따라 풍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해 보존된다. 깎아지른 바위와 깊은 소 등이 불편하긴 하지만 계곡 기슭을 따라 에둘러 오르면 문제될 것이 없다.

울진군은 오는 2017년까지 생태탐방로 주변에 쉼터와 교량, 편의시설 등을 마무리 짓고, 이곳을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는 동시에 백암온천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지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글'사진 울진'박승혁기자 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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