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전신성 경화증' 앓는 베트남인 롱 테이 센 씨

"서서히 굳어가는 몸…더 이상 잃을 것 없어요"

릉 테이 센(21
릉 테이 센(21'여'베트남) 씨는 피부가 서서히 굳는 무서운 병에 걸렸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채 안 돼 '전신성 경화증' 진단을 받은 센 씨는 웃음을 잃고 침대에 가만히 앉아 가쁜 숨을 내쉰다. 이런 여동생 곁을 오빠 쑤언 토(33) 씨가 24시간 지키고 있다.

"센, 뭐라도 먹자."

릉 테이 센(21'여'베트남) 씨가 또 식사를 거부했다. 센 씨는 간이침대에 놓인 병원 식사에 손도 대지 않고 산소마스크를 낀 채 거친 숨만 내쉬었다. 센 씨는 피부가 서서히 굳는 병인 '전신성 경화증'을 앓고 있다. 혼자 앉을 힘도 없을 만큼 몸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그런 센 씨를 오빠 릉 쑤언 토(33) 씨가 뒤에서 꼭 껴안고 있었다.

◆피부가 굳는 병

"쯧쯧, 젊은 사람이 안됐어."

20일 오후 대구 한 대학병원 6층. 몇몇 환자들이 센 씨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돈을 벌기 위해 낯선 땅에 왔다가 몹쓸 병을 얻은 게 가여워서였다. 센 씨는 이달 초 '전신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센 씨를 담당하고 있는 송준혁 류마티스내과 전공의는 "자가면역질환인 경화증에 걸리면 피부가 서서히 굳는데, 센 씨는 피부뿐 아니라 다른 장기까지 침범할 수 있는 전신성 경화증을 앓고 있다"며 "산소마스크에 호흡을 의존하는 것도 이 질환으로 폐까지 손상됐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병은 수술이 불가능해 스테로이드로 면역 억제 치료를 하며 버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병이 자신을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센 씨는 버텨왔다. '내가 어떻게 한국에 왔는데.' 그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구미의 휴대전화 부품공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90만원을 벌었다. 겨울이 되자 손가락과 팔이 퉁퉁 붓는 증상이 심해져 작은 병원에 갔지만 의사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찬 바람을 쐬면 손가락이 아프곤 했는데 이것이 큰 병의 징조가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이달 5일 오전, 센 씨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절했고 온몸의 피부가 딱딱하게 굳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오빠의 한숨

센 씨가 한국에 온 것은 올해 4월. 오빠 토 씨는 2007년 한국에 와 직장을 구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서툰 한국어로 '근로자'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2008년 12월 대구 프레스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이 깔리면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그는 왼쪽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불편한 손으로 공장에서 더 일할 수 없어 농업노동자 비자를 새로 받은 그는 충남 홍성군의 돼지농장에 취업했다.

"공장은 위험하고, 돼지농장은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의 말이 옳았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는 몸이 고된 일이었다. 돼지 수백 마리에게 밥을 주고 변을 치우고, 농장 청소까지, 그는 일하는 기계였다. 밥을 먹고, 자고, 일하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같은 일만 반복했다. 이렇게 일하고 한 달 110만원을 손에 쥐었다. 함께 일했던 중국인 두 명은 월급을 120만원 받았지만 그는 10만원 적게 받았다. 손가락 네 개가 없는 토 씨는 정상적인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제 남은 한 손으로 토 씨는 여동생을 돌본다.

◆"더 잃을 것이 없어요"

오빠는 갓 스무 살을 넘긴 동생이 안타까울 뿐이다. 베트남 탄하 출신 남매는 얼마 전 고향에 있는 부모님께 이 소식을 알렸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토 씨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돈을 많이 벌어서 고향에 새 집을 짓고 온 가족이 모여 사는 소박한 꿈을 그렸지만 동생을 덮친 몹쓸 병 때문에 이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센 씨는 등록 이주 노동자이지만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해 약물치료 비용과 각종 검사비, 입원비 등 500만원이 넘는 돈을 감당해야 한다. 죽음이 다가오는데 센 씨가 각종 검사와 치료를 거부했던 것도 앞으로 발생할 치료비가 두려워서였다. 이들이 가진 돈은 센 씨가 지난달까지 일한 월급 90만원이 전부다. 희망을 찾아 떠나왔던 한국에서 오빠는 한 손을 잃고, 여동생은 건강을 잃었다. 이제 두 남매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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