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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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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 사회는 표어와 포스터가 지배했다. 1960~80년대 관 주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표어'포스터가 생산됐고 공모라는 형식을 빌려 사회 전체에 전달됐다. 전보와 편지, 전화가 전부였던 시대에 표어와 포스터는 메시지를 동시다발적으로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SNS시대로 일컬어지는 요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표어와 포스터는 플래카드와 페이스북'트위터로 대체됐다. 다만 주어진 틀에 고정되다시피한 표어'포스터의 간결함과 직관성이 싫든 좋든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된 '계몽'의 수단이었다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확산되는 말은 사회관계망을 통한 '공유'와 '확산'이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저축은행 비리와 보궐선거, 갖가지 뇌물 사건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런 사회 병리 현상은 숱한 말들을 유행시켰다. '가카' '닥치고' '대가가 아닌 선의' 등 짧은 말들이 항간에 넘쳐났다. 어느 매체는 "말이 짧아지고 격이 떨어졌다"고 평했다. 유명인들이 SNS를 통해 퍼뜨리는 단문들은 한결같이 부조리와 모순을 꼬집고 비틀었다. 더 줄이기 힘든 단문도 '나꼼수' '나가수'처럼 한 단어로 축약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반면 일본은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등 자연재해로 인해 민심이 흉흉했다. 이 때문인지 매스컴이나 일본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는 '간바레 도호쿠(東北)' '간바레 닛폰(日本)'이었다. 쓰나미와 방사능 피해를 입은 동북 지역민에게 "힘내" 하며 용기를 북돋우고 서로 돕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NHK 등 각 방송사들이 평소에는 잠시 언급하고 넘어갔던 동북 지방 날씨를 군 단위까지 자세하게 전달해 시청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배려하는 모습이 확연했다.

아무리 사회적 모순과 각박함이 말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도 이 같은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 체감 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도 구세군 자선냄비는 80여 년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봉사의 손길과 작은 물질이라도 나누려는 움직임이 그 진폭을 키우고 있다. 쓰는 말이 짧아지고 격은 떨어졌을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올해도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새해에는 또 어떤 말이 유행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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