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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할머니의 멋진 삶] 평생 가계부 쓴 서복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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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살림 기록뿐만 아니라, 내 삶의 발자취죠"

우리는 이 세상을 가볍게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삶의 중요함'에 대해 신중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청소년들의 가슴 아픈 소식이 연이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알뜰한 경제생활

올해 87세의 서복순(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할머니. 서 할머니의 가장 중요한 일상은 가계부 쓰는 일이다. 19세 꽃다운 나이에 시집온 후 수십 년 동안 일기처럼 가계부를 써 오고 있다. 최근 몇 차례 큰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여의치 않음에도 가계부 쓰기는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서 할머니의 일상은 소비 중심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규모 있는 경제생활'에 대한 모범답안이 되고 있다.

서 할머니의 가계부를 살짝 들여다봤다. ▷2006년 8월 23일-한의원 진료비 5천원 지출, 친구들과 공원에 나감(찻값 5천원 지출) ▷25일 손녀 지은이 박사 학위수여식 서울 갔음 ▷27일 노인정 친구들에게 식사 대접(16명) 12만4천원 지출 등 5년 전의 삶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최근에는 ▷2011년 12월 28일 (수입)지은 모(母) 용돈(100만원), (지출) 매일신문 대금 2만4천원(2개월치), 제주도 딸, 전복 생선 꿀 부쳐왔음, 감기몸살로 세민병원에 감, 진료비(영양주사 등) 3만8천원 지출 등 일상을 소소하게 기록하고 있다.

수입은 대부분 자녀들이 보내 준 생활비다. 지출은 노인정 친구들에게 대접한 식사비와 병원비. 반찬거리 구입 등 부식비, 손자 손녀에게 준 용돈, 신문 대금 등이다. 이외에도 수입과 지출 내용뿐 아니라 자녀들이 보내온 음식과 선물내용, 집안의 대소사 등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해 두고 있다. 서 할머니에게 가계부는 자신의 삶의 발자취를 기록한 일기다.

가계부의 글씨는 80대 노인의 글씨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라 또박또박하게 쓰는 버릇이 몸에 뱄고, 오랫동안 서예로 글씨를 단련해온 덕분이다.

◆가계부는 가정경제의 기초

서 할머니는 가끔 수년 전의 가계부를 들춰보기도 한다. 그 속에는 무엇을 먹고, 무슨 일을 했는지, 집안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축의금과 조의금은 누구에게 얼마나 했는지 그 당시의 상황을 환하게 알아볼 수 있는 '삶의 궤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꼼꼼한 소비생활을 실천해 온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자녀들이 늘 넉넉하게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결코 과소비하거나 허투루 사용한 흔적은 없다. 지출내용 대부분을 보면 생활비를 아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베풂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 할머니는 "가계부를 쓰는 일은 경제적이고 지혜롭게 세상살이를 할 수 있는 근본"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은 가계부 쓰는 일을 하찮게 생각하지만, 컴퓨터 등을 이용해서라도 꼭 가계부를 써야 규모 있는 경제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용조용하게 말씀하시는 표정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난다.

서 할머니의 평생지기인 가계부는 그동안 수십 권이나 됐다. 하지만, 지금은 달랑 몇 권만 남아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건강에 중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평생 모아두었던 가계부도 없애 버렸다. 요즘은 건강을 되찾아 그날 있었던 일을 차분히 기록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가끔 자녀와 여행 등 나들이를 한 후에도 집에 돌아오면 꼭 며칠 미뤄 둔 가계부를 정리한다. 이런 서 할머니의 묵묵한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큰 교육이 됐다.

평생 가계부를 쓰는 어머니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자란 경운대(구미) 김향자 총장은 "추운 겨울에도 전기세를 아끼느라 제대로 난방을 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근검절약하고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가정경제 원칙을 실천하고 계신다"며 "자녀들에겐 늘 세상에 대한 '사랑'과 '나눔', 그리고 '베풂'의 삶을 살라고 강조하신다"고 말한다.

평생 가계부를 써 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 할머니는 "내가 오늘은 얼마를 쓰고, 작년 이맘때는 무엇을 하는 데 돈을 썼고, 어디에서 수입이 생겼고, 어디에 썼는지 이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느냐?"며 "가계부는 가정 경제를 다스리는 가장 기초적인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도 서 할머니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단순히 내 생활을 기록해 온 것뿐인데 너무 부끄럽다"며 수차례 손사래를 치셨다. 하지만, 서 할머니의 삶은 단순히 가계부 쓰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계획한 경제생활로 불투명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계획성 있는 경제생활'과 '이웃에 대한 나눔과 베풂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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