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두 살짜리 아이가 있다. 1월 1일 설날, 그 아이가 보낸 연하장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연하 엽서에 연두색 종이로 만든 용(龍)이 붙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열심히 용을 만들었을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연하장은 일본의 설을 대표하는 풍물의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매년 11월경에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연하 엽서를 사용한다. 이 엽서에는 각각의 고유 번호가 붙어 있어 1월 중순경에 당첨 번호를 발표하고 경품을 준다. 경품은 대개 우표이지만 때로는 고가의 상품이 주어질 때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의 옛날이야기지만, 내 동생은 라디오에 당첨된 적이 있다. 올해의 1등 당첨자에게는 40인치형 액정 텔레비전과 해외 여행권 등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연하장은 보낸 사람의 인사장이면서 복권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설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출, 새해 첫 참예(參詣'신이나 부처에게 나아가 뵘), 연하장, 명절 요리, 떡국, 찰떡, 세뱃돈 등 일본의 설을 장식하는 행사는 셀 수 없이 많으며,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와 직장은 4월부터 시작되는데, 왜 12월과 1월 사이에 1년을 구분하는 설날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틀에 박힌 설날 행사를 매우 번거롭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연하장을 쓰는 것이 가장 귀찮았다. 평소에 신세를 진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연하장을 쓰는 것 그 자체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량 생산되는 연하장에 대한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연하장이 가족 인사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200매 이상, 나는 50매 정도의 연하장을 만들었다.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는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많았지만, 초등학생인 내가 연하장을 50장이나 보낸다는 것은 중노동이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바뀌면서 그 대상은 늘어만 갔다. 이러한 사정으로 당시부터 일본에는 가정용 연하장 인쇄기가 보급되어 있었다. 그때는 이메일도 없었기 때문에 멀리 있는 사람에게 인사말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우체국의 연하장 발매 캠페인과 형식을 중시하는 일본의 사회적 풍조가 연하장의 대량 생산을 불러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정성 들여 만든 연하장을 보내는 사람도 많아졌다.
또 연하장이 가족들의 인사장 구실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결혼 전에는 자기 이름만 넣어 연하장을 보낸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갑자기 배우자의 이름과 함께 연하장을 보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이름도 같이 넣게 된다. 이러한 가족 연하장은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전부터 나는 이러한 관습을 부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이가 없는 사람도 있다. 원하지 않게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스스로 그런 인생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가족 연하장을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가족 연하장은 최근까지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불관용성을 상징하고 있다.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는 연하장이나 설날 행사에 대해 좋은 이미지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 설날 어린아이가 열심히 만든 연하장을 받아 들었을 때, 역시 마음이 담긴 인사는 즐거운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설날에 무병'무사고를 기원하며 7가지의 나물을 넣어 끓인 죽(七草粥)을 아이들에게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전통적인 설날 행사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설날 행사 준비는 귀찮고 문제가 되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내년부터는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나도 즐긴다는 생각으로 내 나름의 스타일로 설날을 맞고 싶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은 설날을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미야자키 치호(宮崎千?)/일본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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