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9대 '무조건 바꿔' 위험…지역정치 구심 살려놓아야

국회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한마디로 '짬밥문화'가 지배한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등 여야 정당의 대표와 원내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의 핵심 당직은 최소한 3선 이상이 돼야 맡을 수 있다. 예외는 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도 재선 때 당 대표를 맡았고 재선급이 사무총장을 맡은 적도 없지는 않다. 물론 흔치도 않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예결위원장이나 상임위원장 자리도 3선 이상이 돼야 도전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환갑이 넘은 우리 국회의 관행이다. 18대 총선에서 4, 5선 이상 중진의원들을 대대적인 물갈이하자 한나라당은 당 대표감이 없어서 당시 원외에 있던 박희태 국회의장을 당 대표에 나서도록 한 적도 있다.

4'11 총선을 앞두고 쇄신과 물갈이 바람이 여의도를 향해 거세게 일고 있다. 지역에서도 현역의원에 대한 교체지수가 상당히 높다. 현역 국회의원들는 무조건적인 물갈이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신공항 무산을 전후로 대조를 보인 대구경북과 부산의 정치력

2011년 3월 말. 김황식 국무총리와 정종환 국토부장관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하고 이틀 후 이명박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백지화의 당위성을 설득하러 나섰다.

정부 내에서 신공항 백지화 방침이 최종 결정되기까지 신공항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득력있게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권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치권 내 창구는 없었다. 대신 신공항에 대한 부산지역의 입장을 전달하는 창구는 국회와 정부 내에 즐비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는 김무성 의원이었고 서병수 의원은 최고위원이었다. 이들은 부산지역 여론을 여권의 요로에 전달하면서 대구경북이 밀던 밀양신공항 결정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었다. 지역의원 가운데는 이들에게 필적할 정치적 비중을 갖춘 인물이 없었다. 6선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있었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의원들에 의해 발목이 잡힌 상태여서 정치적 현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화려하기만 한 부산경남 국회의원 면면

국회의장과 부의장, 당 대표와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의 핵심요직은 PK가 독식하다시피 했다. 대구경북은 구경만 했다. 선수와 캐리어에서 부산경남 출신에 대적할 수가 없었다.

국회의장직은 김형오(5선), 박희태(6선) 의원 등 부산경남지역 의원이 번갈아 맡았고 부의장직도 부산의 정의화 의원(4선)이 차지했다.또 부산의 김무성 의원(4선)은 원내대표, 허태열'서병수 의원(각 3선)은 최고위원을 지냈다. 안경률 의원(3선)은 사무총장을 지냈다. 경남의 이주영 의원(3선)은 정책위의장을 하고 있고 김정권 의원은 재선임에도 사무총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18대 대구경북 국회의원

대구경북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4선)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6선)을 필두로 6선의 홍사덕, 4선의 박종근'이해봉, 3선의 이한구'김성조'이병석'이인기 의원 등과 다수의 초,재선 의원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중앙정치권에서는 다수의 친박계 의원들이 친이계에 밀려나 비주류로 분류됨에 따라 힘을 쓰지 못했다. 당 대표는 고사하고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등 핵심당직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3선의원들이 한 번씩 맡게 되는 예결위원장과 상임위원장을 한 차례씩 맡는 것이 전부였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인 유승민 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되기 전까지 한나라당 지도부에는 김성조 의원이 최고위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했을 뿐 한 사람도 진입하지 못했다.

재선의 주호영 의원이 특임장관'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고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 장관을 맡았다. 이명규 의원도 당 전략기획본부장과 제1 사무부총장에 이어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지만 선수(選數)의 벽에 가로막혀 그 이상의 당직을 맡기는 어려웠다. 3선의 김성조 의원만이 안상수 원내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을 맡았을 뿐이다.

◆18대 대구경북지역 정치권 무력감의 뿌리

대구경북 정치권이 중앙정치무대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출발점은 18대 총선이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지역 정치인 다수는 '박근혜 지지' 성향을 보였다. 결과는 박근혜가 아닌 이명박의 승리. 정권 교체 후 공천권을 가진 친이 세력들은 지역의 친박중진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하지만 이들은 '박근혜 바람'을 타고 살아남았다. 지역 정치권은 소수의 친이계 소장파와 다수의 친박계로 짜여지게 된 것이다.

이런 구성의 결과는 금방 나타났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타 지역과 경쟁에서 밀릴 때마다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은 다 뭐하고 있나"라고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국회의원들의 구성 면면을 보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측면도 많았다.

◆현역 의원들의 말

이와 관련, 최경환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면 지역적으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핵심적인 위치에서 지역의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적절하게 세대교체를 하고 인물을 교체해야 하겠지만 초'재선, 3선 이상 중진들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지역 정치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초선의원 시절에는 어디가서 말 한 마디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며 "재선으로 당선된 후 각종 당직을 맡으면서 국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3선 이상 중진이 돼서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등의 당직을 맡게 되면 국정에 대한 영향력도 극대화시킬 수가 있어 지역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국회에서 초선의원은 재선, 3선 등을 키우기 위한 '묘목'같은 존재인데 선거 때마다 바꿔서는 지역정치력을 강화시킬 수 없다는 말이었다. '무조건 바꿔' 열풍에 대한 항변이기도 했다.

◆포스트 박근혜, 포스트 이상득의 존재 필요성

박근혜의 존재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나서서 지역을 역성들 수는 없지만 정치권의 누구도 정면으로 대들 수 없는 '포스'가 있다. 대구의 든든한 방어선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현직 대통령의 형님이다. 최다선 의원이기도 하다. 정치적 무게감에서 선수에서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19대 국회에서는 누가 지역에서 이런 역할을 할 지 의문이다. 별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현역 국회의원들 위주로 돌아가는 여의도에서는 "다선의 무게감 있는 정치인을 키우는데는 10년도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가 많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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